스트라스부르 국립행정학교(ENA) 폐지

마크롱 대통령, 국립행정학교(ENA) 폐지 선언

엠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4월 8일, 프랑스 국가 엘리트 관료를 양성해 온 국립행정학교(ENA, École Nationale d’Administration)를 폐지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는 그의 대선 공약이자, 제5공화국 내내 논의되어온 오래된 과제였다. 앞으로 ENA는 ‘공공서비스학교’(ISP, Institut du service public)로 대체될 예정이다.



엘리트 양성소 ENA의 위상

1945년 드골 장군의 서명으로 설립된 ENA는 프랑스 행정 엘리트 양성의 중심이었다. 졸업생들은 회계 감사원, 최고 행정재판소, 재무 감사원 등 핵심 기관에서 활동하며 국가 운영을 이끌어왔다. 조르주 퐁피두,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자크 시라크, 그리고 마크롱 대통령까지 제5공화국 대통령 네 명이 ENA 출신이다. 총리 9명 또한 이 학교를 거쳤다.



불평등의 상징이 된 학교

그러나 ENA는 오래전부터 ‘사회적 이동성의 벽’으로 비판받아왔다. 2019~2020년 입학생 82명 가운데 노동자의 자녀는 단 한 명뿐이었으며, 창립 이래 노동자 가정 출신은 평균 5.5%에 불과했다. 반면 70% 이상은 간부 계층의 자녀였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는 이미 1964년 《상속인들》(Les Héritiers)에서 ENA와 그랑제콜을 “지배계급의 상속자들이 독점하는 제도”라 비판했고, 이후 이를 “국가 귀족”(noblesse d’État)이라 명명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올해 초 낭트 방문에서 “우리 공화국의 어느 아이도 ‘그 학교는 나와 상관없다’고 말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 강조했다. 프랑스 사회에서 상향 이동의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 있다는 지적과 맞닿아 있다.



개혁 논의와 보고서

ENA 개혁은 수차례 시도되었지만 실현되지 못했다. 장-피에르 슈벤느망, 프랑수아 바이루, 브뤼노 르 메르 등도 폐지 필요성을 언급한 바 있다. 2019년 ‘노란 조끼’ 시위 이후 마크롱 대통령은 행정 개혁의 압박을 받았고, 같은 해 프레데릭 티리에(Frédéric Thiriez)에게 고위 공무원제도 개혁 보고서를 의뢰했다. 2020년 제출된 보고서는 ENA 폐지와 함께 ‘공공행정학교’(EAP, École d’Administration Publique) 설립을 제안하며, 입학 정원 일부를 하위 계층 자녀에게 배정하는 ‘적극적 차별 정책’을 권고했다.



ISP, 새로운 출발

새로 설립될 ISP는 스트라스부르에 있는 ENA 자리에 들어설 예정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문제는 ENA 그 자체가 아니라, ENA에 진입하는 학생 구성이 지나치게 제한적이라는 점”이라며 개혁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ISP는 보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학생들을 모집해 행정 관료 양성의 공통 교육을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ISP 졸업생들은 기존처럼 곧바로 최고위 직책에 오르지 않고, 일정 기간 현장에서 실무 경험을 쌓은 뒤 지휘직에 임명된다. 이는 행정 엘리트가 국민의 현실에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도록 하려는 조치다.



국가 엘리트 양성의 전환점

ENA는 70여 년 동안 프랑스 관료제의 심장부로 기능했지만, 동시에 사회적 불평등을 재생산한다는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마크롱 대통령의 결정은 단순한 학교 폐지를 넘어, 프랑스 사회의 계층 고착 문제를 정면으로 겨냥한 시도로 볼 수 있다. 이제 ENA의 자리는 ISP가 이어받으며, 국가 엘리트 양성 시스템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다음 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