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첼, 그 꼬인 팔의 역사 — 독일과 알자스 사이의 빵 이야기

브레첼(Bretzel), 팔짱 낀 빵의 역사

알자스의 전통 시장이나 맥주축제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단연 브레첼(Bretzel, 한국에서는 프레첼 Pretzel)이다. 황새, 목조 가옥, 슈쿠르트처럼 알자스를 상징하는 아이콘이자, 쌉쌀한 맥주와 함께 곁들이면 그 지방의 공기를 그대로 전해주는 음식이다. 그러나 이 짭짤한 빵은 독일만의 것이 아니다. 수 세기 동안 게르만 문화권 전역을 넘나들며 전파된 유럽적 유산이다. 한때 한 미국 대통령이 브레첼을 먹다 목이 막힌 일화가 화제가 되기도 했을 만큼, 이 작은 빵은 이미 세계적인 존재다.


팔짱을 닮은 소금빵

브레첼은 탄산수소나트륨(베이킹소다) 용액에 데친 뒤 구워내는 독특한 빵이다. 특유의 윤기와 갈색 빛깔은 이 과정에서 생긴다. 전통적인 모양은 두 팔이 교차된 형태로, 굵은 소금 알갱이가 겉면을 장식한다.
이름은 지역마다 다르다. 표준 독일어로는 브레첼(Brezel) 혹은 라우겐브레첼(Laugenbrezel), 바이에른 지방에서는 브레츤(Brezn), 슈바벤에서는 브레체트(Bretzet) 또는 브레츠그(Bretzg)로 불린다. 알자스에서도 하천을 경계로 방언이 달라, 저지 알자스어에서는 브레드슈델(Bredschdel), 고지 알자스어에서는 브라드슈달(Bradschdal)이라 한다.



백작의 제빵사와 세 개의 태양

브레첼의 기원을 두고는 수많은 전설이 전해진다. 그중 가장 널리 알려진 이야기는 15세기 뷔르템베르크(Wurtemberg) 지역에서 비롯됐다.
우라흐(Urach) 마을의 제빵사 '프리더(Frieder)'는 주인인 '에버하르트 턱수염 백작(comte Eberhardt le Barbu)'의 미움을 사 감옥에 갇힌다. 백작은 그에게 “사흘 안에 태양을 세 번 볼 수 있는 빵을 만들라”는 조건을 내건다. 고심하던 프리더는 기도 중 팔짱을 낀 아내의 모습을 보고 영감을 얻는다. 반죽으로 아내의 팔처럼 두 끝을 꼬아 세 개의 구멍이 생기도록 빚은 것이다.
우연히 반죽이 소다수에 빠지는 사고가 있었지만, 그 빵은 놀랍도록 맛있었다. 백작은 프리더를 용서했고, 그의 부인 바르바라(comtesse Barbara)가 라틴어 ‘팔’을 뜻하는 브라키아(bracchia)에서 따온 이름 브라첸(Brazen)을 붙였다고 한다.


수도사들의 맥주 안주

또 다른 이야기는 성 갈 수도원(abbaye de Saint-Gall)에서 비롯된다. 수도사들이 양조장 앞에서 맥주를 받기 위해 팔짱을 끼고 서 있는 모습에서 제빵사가 착안해, 두 팔이 교차된 모양의 빵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수도원 식탁에 오르자 곧 인기를 끌었고, 맥주와 함께 먹는 대표적인 과자가 되었다. 이름은 역시 ‘팔(bracchia)’에서 유래한 브레첼(Brezel)이었다.



이탈리아의 기억을 담은 빵

콜마르(Colmar) 지역의 전설은 브레첼을 이탈리아에서 온 제빵사의 작품으로 본다. 그는 고향인 브레셸로(Brescello)를 기리기 위해 빵에 마을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이렇듯 제빵사의 아내, 수도사, 고향 마을 등 전설마다 다른 ‘주인공’이 있지만, 모두 ‘팔짱을 낀 형태’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문헌 속의 브레첼

구전에서 벗어나 실재하는 기록으로 가보면, 브레첼은 12세기 문헌에도 이미 등장한다. 란츠베르크의 헤라데 수녀원장(Herrade de Landsberg)이 1159년에서 1175년 사이에 제작한 기독교 백과서 《호르투스 델리키아룸(Hortus Deliciarum)》에는 식탁 위의 에스더(Esther)와 아하수에로 왕(roi Assuérus) 옆에 브레첼이 그려져 있다. 같은 필사본의 다른 삽화에서도 솔로몬(Salomon)의 식탁에 생선과 브레첼이 함께 놓여 있다. 흥미롭게도 이 시기의 브레첼은 오늘날처럼 두 팔이 교차된 형태가 아니라, 감긴 듯한 모양이었다. 이미 중세 유럽 전역에 퍼져 있던 상징적 빵이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알자스의 돌문 위에 새겨진 빵

르네상스 시기, 브레첼은 도시 문장이나 제빵소 문 위의 상징으로 새겨졌다. 스트라스부르 시립병원 제빵소 문 위에는 1572년이라는 날짜와 함께 작은 빵과 브레첼 문양이 새겨져 있다. 인근 마을 로샤임(Rosheim)의 제빵소 문에서도 비슷한 조각이 발견되며, 형태는 현재와 거의 같다.


‘고기 없는 빵’의 어원

학자들 사이에서는 ‘브레첼’의 어원을 두고 논쟁이 있다. 한 설에 따르면, 중세 알자스어의 브레트스텔(brettstell)은 ‘브레트 대신의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브레트는 고기를 의미하는 것으로, 즉 사순절(Carême) 동안 고기를 대신하던 빵이라는 뜻이다. 이 해석은 피터 브뤼헐(Brueghel) 대(大) 화가의 1559년 작품 《카니발과 사순절의 싸움(La lutte entre Carnaval et Carême)》에서도 확인된다. 그림 속 사순절 행렬의 어린이들이 딸랑이를 흔들며 브레첼을 들고 있는 장면은, 이 빵이 ‘고기 없는 기간의 상징’이었음을 보여준다.


팔짱 낀 기도, 혹은 축복의 결속

다른 학자들은 라틴어 브라키움(bracchium, 팔)에서 직접 어원을 찾는다. 이 빵은 로마 제국 말기에 이미 존재했으며, 결혼식의 결속을 상징하기도 했다. 중세 회화 속 ‘가나의 혼인 잔치(noces de Cana)’ 장면에서도 브레첼은 부부의 결합을 나타내는 빵으로 그려진다.


오늘의 브레첼

오늘날 브레첼은 종교적 의미를 잃고, 연중 언제나 즐길 수 있는 간식이 되었다. 거리의 제빵소나 고급 레스토랑에서도, 알자스의 카페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다. 그러나 그 안에는 여전히 기도의 손, 수도원의 식탁, 단식의 계절이 켜켜이 겹쳐 있다. 짭짤한 소금 알갱이와 매끈한 매듭 모양 속에는 천 년의 유럽 문화가 녹아 있다. 단순한 빵이 아니라, 팔짱을 낀 인간의 역사와 휴식의 상징 — 그것이 브레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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