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라스부르 덮개교(Ponts couverts)의 역사

스트라스부르의 쁘띠 프랑스 동쪽, 루이즈 바이스(Louise Weiss) 광장의 끝자락에는 일(l’Ill)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거대한 석탑이 늘어선 이 '덮개교(Ponts Couverts)'는 스트라스부르를 대표하는 역사적 기념물이지만, 그 기원과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14세기의 요새화된 다리

덮개교의 역사는 14세기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스트라스부르는 신성 로마 제국의 자유도시로서 자치권을 누리며 번영하고 있었다. 도시는 강을 통한 교역이 활발했으며, 일(l’Ill) 강과 라인(Rhin) 강을 잇는 수로를 장악하며 무역 중심지로 성장했다. 경제적 번영과 함께 방어시설에 대한 필요성도 커졌고, 이에 따라 도시는 강을 따라 요새를 확장하기 시작했다.


일(l’Ill) 강은 여러 개의 작은 운하(Spitzmühle, Duntzenmühle, Zornmühle)로 나뉘어 있어 방어에 적합한 지형을 형성하고 있었다. 이를 활용해 도시는 운하를 가로지르는 요새화된 다리를 건설했고, 이 다리들에는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한 기와 지붕이 덮였다. 이것이 ‘덮개교(Ponts couverts)’라는 명칭의 유래다. 이 다리는 네 개의 석탑과 연결되어 있었으며, 당시의 주요 탑으로는 말젠탑(Malzenturm), 하인리히탑(Heinrichsturm), 한스 폰 알타임탑(Hans von Altheimturm), 그리고 형무소로 사용된 헹커탑(Henckerturm)이 있었다. 원래 이 탑들은 도시 방어를 위한 시설이었다.



방어 기능의 쇠퇴와 변화

덮개교의 초기 역사에 대한 기록은 많지 않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몇 차례의 보강 공사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초기에는 목재로 된 기둥을 사용했으나, 후에는 사암으로 교체되었고, 16세기에는 방어력을 강화하기 위해 쇠창살이 추가되었다. 그러나 기술 발전과 함께 덮개교의 방어 시설로서의 기능은 점차 시대에 뒤처지게 되었다. 특히 포병 무기가 발전하면서 기존의 방어 체계는 실효성을 잃었다. 이에 따라 덮개교의 군사적 역할은 점차 축소되었고, 1823년경에는 인근의 탑들이 방어시설이 아닌 감옥과 고문실로 활용되기까지 했다.



17세기: 새로운 방어시설, 보방 댐의 등장

1690년경이 되면 덮개교는 더 이상 방어시설로 인식되지 않았다. 1681년 스트라스부르가 프랑스 왕국에 편입되면서, 프랑스는 기존 방어시설을 현대화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덮개교 북쪽, 현재의 의대 건물 동쪽에 보방 댐(Barrage Vauban)이 건설되었다.

보방 댐(Barrage Vauban)


1681년부터 1688년까지 프랑스의 군사 건축가이자 전략가였던 세바스티앙 르 프레스트르 드 보방(Sébastien Le Prestre de Vauban)이 설계하고, 기술자 자크 타라드(Jacques Tarade)가 건설한 이 댐은 덮개교를 대체하는 새로운 방어시설로 자리 잡았다. 이곳에는 대포를 배치할 공간이 마련되었으며, 전쟁 시 수문을 개방해 적군을 침수시키는 전략이 활용되기도 했다. 실제로 1870년 보불전쟁 당시 스트라스부르 공성전에서 이 기술이 사용된 기록이 남아 있다. 

17세기 여름 풍경, HOLLAR Wenzel 작품


18세기: 덮개교의 지붕 철거

덮개교는 18세기에 접어들면서 본래의 방어 기능을 완전히 상실하게 되었다. 1783년, 기존의 목재 구조물이 철거되고 간단한 보도교로 대체되면서 ‘덮개교’라는 이름을 탄생시킨 지붕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19세기: 재건과 변화

19세기에 접어들며 덮개교는 다시 한 번 변화를 맞이했다. 1860년대에 현재의 돌다리 형태로 재건되었으며, 우리가 오늘날 볼 수 있는 모습이 이 시기에 형성되었다. 그러나 1869년 발생한 화재로 인해 석탑 중 하나였던 말젠탑이 무너졌고, 이후 복원되지 않았다.

20세기 초의 모습



20세기: 역사적 기념물로 지정되다

오랜 세월을 거쳐 살아남은 세 개의 석탑은 1928년 역사적 기념물로 지정되면서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오늘날 덮개교는 쁘띠 프랑스와 연결되는 대표적인 관광 명소로 자리 잡아, 과거의 역사와 현대의 정취를 함께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사랑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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