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네 꽁띠, 신화가 된 와인의 역사

한 병의 와인이 전설이 되기까지

브루고뉴의 와인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언급되는 이름이 있다. 바로 도멘 드 라 로마네 꽁띠(Domaine de la Romanée-Conti), 줄여서 DRC. 이 이름은 단순한 브랜드가 아니라, 와인 세계의 ‘신화’ 그 자체다. 2018년, 뉴욕 소더비(Sotheby’s) 경매장에서 1945년 빈티지 로마네 꽁띠 두 병이 등장했다. 한 병은 55만 8천 달러, 또 한 병은 49만 6천 달러에 낙찰됐다. 지금 환율로 약 8억 원. 한 병의 와인이 이토록 비싸다는 사실은 놀랍지만, 그만한 이유가 있다.




마지막 순혈 피노 누아

1945년은 단순히 전쟁이 끝난 해가 아니다. 브루고뉴의 포도밭에 필록세라(phylloxéra) 병충해가 번지기 전, 순혈 비티스 비니페라(Vitis vinifera) 품종으로 만들어진 마지막 빈티지이기 때문이다. 그 해 생산량은 단 600병. 극히 적은 수량과 역사적 의미, 그리고 압도적인 품질이 겹치면서, 이 와인은 세기의 상징이 되었다.




수도원에서 시작된 와인의 운명

로마네 꽁띠의 이야기는 13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232년, 알릭스 드 베르지(Alix de Vergy) 공작부인이 자신의 포도밭을 생 비방(Saint-Vivant) 수도원에 기증하면서 역사가 시작된다. 당시 이곳은 “르 클루 데 생 비방(Le Cloux des Cinq Journaux)”으로 불렸으며, 훗날 로마네 꽁띠와 로마네 생 비방(Romanée-Saint-Vivant)의 기원이 되었다.


로마네 생 비방(Romanée-Saint-Vivant)


왕실의 질투와 경매의 전설

18세기 중반, 포도밭은 경매에 부쳐졌다. 경쟁자는 두 명이었다 — 꽁띠 왕자(Prince de Conti)와 루이 15세의 연인이던 퐁파두르 부인(Madame de Pompadour). 결국 꽁띠 왕자가 당시 거액인 8,000리브르를 제시해 승리했고, 자신의 이름을 따 ‘로마네 꽁띠’라 명명했다. 이 와인은 이후 왕족 전용으로만 제공되었고, 귀족이 아닌 사람에게는 판매조차 금지되었다. 로마네 꽁띠가 단순한 와인이 아닌 ‘지위의 상징’이 된 순간이었다.


꽁띠 왕자(Prince de Conti)


혁명과 재탄생

프랑스 혁명은 이 전설적인 포도밭에도 예외 없이 다가왔다. 귀족 재산이 몰수되며 로마네 꽁띠는 국유화되었고, 이후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뀌었다. 1869년, 자크 마리 뒤볼 블로셰(Jacques-Marie Duvault-Blochet)가 포도밭을 인수하면서 오늘날 도멘 드 라 로마네 꽁띠의 기틀이 마련됐다. 그는 리쉬부르(Richebourg), 에세조(Échézeaux), 그랑 에세조(Grands Échézeaux) 등 인근의 그랑 크뤼(Grand Cru) 포도밭을 함께 매입하며 도멘을 확장했다.


독점의 땅, 모노폴

로마네 꽁띠가 특별한 이유 중 하나는 ‘모노폴(Monopole)’이라는 개념 때문이다. 이는 하나의 생산자가 포도밭 전체를 단독으로 소유하고 와인을 만드는 경우에만 붙는다. DRC는 로마네 꽁띠와 라 타슈(La Tâche) 두 밭을 단독 소유하고 있으며, 그 외 리쉬부르, 에세조, 생 비방 등은 여러 생산자와 공유한다. 이 작은 차이가 로마네 꽁띠를 ‘절대적인 존재’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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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을 지키는 생산 방식

오늘날 DRC는 바이오다이나믹 농법(Biodynamic Agriculture)의 선구자 르로이(Lalou Bize-Leroy) 여사의 철학 아래, 인공 비료와 화학 처리를 배제한 자연주의 방식으로 포도를 재배한다. 포도밭 면적은 고작 1.8헥타르 — 축구장 세 개 정도. 매년 약 450케이스, 즉 5천 병 남짓한 양만 생산된다. 희소성 자체가 가치다.


위조와 협박, 전설의 이면

희귀한 만큼 위조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2000년대 초, 인도네시아계 수집가 루디 쿠르니아완(Rudy Kurniawan)은 로마네 꽁띠를 위조해 수백만 달러의 사기를 저질렀고, 결국 체포되었다. 또 2010년에는 한 남성이 포도밭에 독을 뿌리며 100만 유로를 요구하는 협박 사건까지 발생했다. 프랑스 경찰은 함정수사 끝에 그를 검거했지만, 사건은 부르고뉴 와인 업계 전체를 뒤흔들었다.


루디 쿠르니아완(Rudy Kurniawan)


현대의 명성과 불편한 진실

2020년, 한국 식약처는 수입된 로마네 꽁띠 일부에서 기준치를 초과한 납 성분을 검출하며 수입을 중단했다. 이후 국내에서는 정식 유통이 금지되었고, 시장에 남은 병들만 거래되고 있다. 로마네 꽁띠는 개별 판매가 아닌 12병 세트 구성으로만 유통되며, 세트 안에는 라 타슈, 리쉬부르, 생 비방 등 DRC의 모든 그랑 크뤼 와인이 포함된다.



죽기 전에 한 번쯤은

로마네 꽁띠는 단순히 마시는 와인이 아니라, 경험의 총체다. 차 한 대 값에 달하는 가격은 비현실적으로 보이지만, 와인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이 한 병은 ‘죽기 전에 반드시 마셔봐야 할 술’로 불린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로마네 꽁띠를 마신다는 것은 수세기의 역사와 인간의 욕망, 그리고 땅의 시간을 함께 음미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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