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멘 키엔츨러(Domaine Kientzler), 알자스의 와이너리

알자스의 숨결을 담은 와인, 도멘 키엔츨러(Domaine Kientzler)

리보빌레의 돌담 계단에서 피어난 다섯 세대의 시간

알자스(Alsace)는 프랑스에서도 가장 복합적인 정체성을 지닌 땅이다. 독일 국경과 맞닿은 이 지역은 수 세기 동안 두 나라의 문화가 교차하며, 언어·음식·건축·와인 모두가 독자적인 풍경을 만들어왔다. 그 한가운데, 리보빌레(Ribeauvillé)라는 작은 마을이 있다. 그리고 이곳에서 150년 넘게 흙을 갈고 포도를 길러온 가문이 있다. 도멘 키엔츨러(Domaine Kientzler), 그 이름은 알자스의 정체성을 압축한 상징과도 같다.



송진을 다루던 사람에서, 향을 빚는 사람으로

'키엔츨러(Kientzler)'라는 이름은 독일 남서부 방언에서 유래한 게르만계 성씨다. 중세 독일어 Kien은 '송진' 혹은 '불붙는 나무'를 뜻하며, 직업을 나타내는 접미사(-ler)가 합쳐졌다. 즉, 'Kientzler'는 원래 '송진을 다루던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이름이었다. 송진은 불을 지피고 향을 내는 재료였다. 자연의 진액에서 불과 향을 얻는 일이 곧 생업이던 이 가문은, 세대를 거쳐 자연의 향을 포도 속에서 길어내는 사람들이 되었다. 이름의 어원이 상징처럼 와인의 정체성과 맞닿아 있는 셈이다.



1866년 리보빌레에서 시작된 포도밭의 역사

도멘 키엔츨러의 기원은 1866년, 알퐁스 도미니크 키엔츨러(Alphonse Dominique Kientzler)가 리보빌레에서 포도재배를 시작한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그는 포도밭과 함께 식료품점을 운영하며 생계를 이어갔고, 지역 협동조합 설립에도 참여했다.

본격적인 와인 생산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 그의 손자 프랑수아 키엔츨러(François Kientzler) 세대에서 이루어졌다. 산업화의 흐름 속에서도 그는 알자스 전통 품종의 명맥을 지키며 포도밭의 가능성을 확장했다.

1970년대에 이르러 안드레 키엔츨러(André Kientzler)가 가문을 이어받으며 결정적인 변화를 일으킨다. 그는 구식 품종인 샤슬라(Chasselas)를 과감히 제거하고, 리슬링(Riesling)과 피노 그리(Pinot Gris), 게뷔르츠트라미너(Gewürztraminer) 같은 알자스의 정통 품종으로 포도밭을 재구성했다. 이 과감한 선택이 오늘날 도멘 키엔츨러를 '리보빌레의 상징'으로 만든 출발점이었다.



돌담 계단 위의 세 그랑크뤼(Grand Cru)

도멘 키엔츨러의 영토는 약 13.8헥타르, 그중 4.4헥타르가 그랑크뤼(Grand Cru) 등급에 속한다. 리보빌레 일대의 세 포도밭, 가이스베르크(Geisberg), 오스터베르크(Osterberg), 키르히베르크 드 리보빌레(Kirchberg de Ribeauvillé)가 그 주무대다.


1. 가이스베르크(Geisberg Grand Cru)

리보빌레 북쪽 가파른 비탈에 자리한 이 포도밭은 석회암과 사암이 뒤섞인 테라스형 경사면으로, 60년이 넘은 오래된 포도나무들이 줄지어 있다. 높은 고도와 바람의 흐름, 그리고 배수가 좋은 토양 덕분에 산미가 또렷하고 미네랄 향이 풍부한 리슬링이 태어난다. ‘돌의 와인’이라 불릴 만큼 긴장감 있는 구조감이 특징이다.



2. 오스터베르크(Osterberg Grand Cru)

가이스베르크보다 완만한 동향 경사면에 자리한 오스터베르크는 마른 점토와 석회질이 혼합된 트라이아스기 마른토양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곳의 리슬링은 더 차분하고, 약간의 화약향(flinty note)이 감도는 복합적인 스타일을 보인다. 숙성 잠재력이 크고, 시간에 따라 과일 향과 미네랄이 조화롭게 변해간다.



3. 키르히베르크 드 리보빌레(Kirchberg de Ribeauvillé Grand Cru)

해발 270~350미터의 남향 경사면, 숲의 바람이 닿는 위치에 있는 키르히베르크는 다양한 품종이 공존한다. 리슬링, 피노 그리, 뮈스카(Muscat)가 함께 재배되며, 서늘한 공기 덕분에 산도가 균형 잡힌 와인이 생산된다. 이 포도밭의 와인은 향의 층이 두껍고, 긴 숙성을 통해 깊이를 더한다.




안드레에서 아들 아르튀르(Arthur)로 – 다섯 세대의 바통터치

현재 도멘 키엔츨러는 5세대째 가족 경영으로 이어지고 있다. 안드레 키엔츨러 이후, 그의 아들 아르튀르(Arthur)가 도멘을 이끌며 유기농 전환(organic conversion)을 추진하고 있다. 오래된 포도나무에서 씨를 받아 다시 심는 마사유 셀렉션(massale selection) 방식도 도입했다. 이는 포도밭의 생물학적 다양성과 전통 유전자 계통을 지키려는 철학의 일환이다.

오늘날 도멘 키엔츨러의 와인은 '드라이한 알자스 화이트'의 전형으로 평가받는다. 화려한 향보다는 광물감, 산도, 구조감을 중시하며, 병입 후 장기 숙성을 통해 세련된 균형을 완성한다.

 



'신의 물방물' 속 등장, 그리고 문화의 교차점

도멘 키엔츨러의 이름은 2018년, 일본 만화 『신의 물방울 – 마리아주(Les Gouttes de Dieu – Mariage)』 제3권에 등장하며 다시금 주목을 받았다. 작품 속에서 게뷔르츠트라미너 2012 빈티지는 태국 커리와의 궁합으로 소개된다. 

"다른 알자스 와인보다 덜 달고, 더욱 생동감 있는 맛. 입 안의 질감은 다이긴조(大吟醸) 사케(일본 고급 사케)를 닮았다."

이 한 줄의 묘사는 도멘 키엔츨러가 품고 있는 알자스의 정체성을 그대로 압축한다. 달지 않지만 향은 깊고, 섬세하지만 결단력이 있는 맛. 그것이 바로 리보빌레의 토양이 빚어내는 언어다.


도멘 키엔츨러의 게뷔르츠트라미너 오스터베르크
Gewurztraminer Osterberg Grand Cru 2019



알자스, 유럽의 경계에서 피어난 와인의 문법

도멘 키엔츨러는 단순히 한 와이너리가 아니다. 알자스라는 지역의 언어, 문화, 기후, 그리고 역사적 경계를 품은 살아 있는 유산이다. 이곳의 와인은 '감정의 와인'이 아니라 '구조의 와인'이라 불린다. 석회암과 사암이 만나 형성한 단단한 골격, 그리고 고지대의 차가운 공기가 빚어내는 산도. 그 위에 인간의 세심한 양조가 더해져 비로소 "시간이 맛이 되는 와인"이 완성된다.



한국에서는 아직 ‘알자스 와인’이 대중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다보니, 도멘 키엔츨러의 와인은 '속도보다 균형', '향보다 구조'라는 가치로 다가온다. 한 모금의 리슬링 속에서 돌의 냄새와 비의 기억이 함께 느껴질 때, 우리는 알자스가 단순한 지역이 아니라 경계 위에서 세련된 조화를 만들어온 문화의 실험실임을 깨닫게 된다.




Domaine Kientz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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