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한 형태의 에스플라나드 교회

스트라스부르에서 대학 시절을 보냈다면, 에스플라나드(Esplanade) 지구의 팔레르모 거리(rue de Palerme)와 로마 거리(rue de Rome) 사이를 지나며 눈길을 사로잡는 한 건물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바로 그리스도 부활 교회(Église du Christ-Ressuscité)다. 37미터 높이의 첨탑이 하늘로 치솟은 이 교회는 멀리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도시 풍경 속에서 이처럼 이질적인 형태를 한 교회는 좀처럼 보기 어렵다. 그 독특한 실루엣은 오늘날까지도 '이상한 건물'이라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에스플라나드 지구의 탄생과 함께 세워진 교회

이 교회의 역사는 에스플라나드 지구의 형성과 함께 시작된다. 지금은 학생과 주민이 뒤섞여 활기를 띠지만, 이 지역은 한때 군사 기지와 폭격의 흔적이 남은 폐허였다. 1958년, 시가 군사 구역이었던 에스플라나드를 매입하면서 대규모 도시 개발 계획이 추진된다. 학교, 상가, 주거지를 함께 갖춘 새로운 지구를 건설하려는 구상이었다.

1960년대 초, 이 개발의 중심부에 자리 잡은 것이 바로 에스플라나드 주거단지였다. 1962년에 완공된 법학부 건물과 화학 타워는 새롭게 조성된 대학 캠퍼스를 상징한다. 이 지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옛 '급수탑(château d’eau)'이 서 있었는데, 1880년대에 지어진 이 탑은 군사시대의 마지막 흔적이었다. 급수탑은 1960년대 도시 재건 과정에서 철거되고, 그 자리에 현재의 그리스도 부활 교회가 들어섰다.


이 교회는 시타델 공원(Parc de la Citadelle) 인근의 '삼위일체 교회(Église de la Trinité)'와 거의 동시에 지어졌다. 당시 가톨릭교회는 여전히 새로운 주거지마다 예배 공간을 세우던 시기였다. 에스플라나드의 입구이자 크루트노(Krutenau) 지구와의 경계에 자리한 이 교회는 단순한 종교 시설을 넘어 지역 공동체를 연결하는 상징으로 설계됐다.

교회의 설립자 카메레 신부(l’Abbé Kammerer)는 이곳이 신자들의 생활권 안에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신자들이 대부분 도보로 올 것이라 판단해 주차 공간 축소를 주장하기도 했다. 교회의 기능이 단순한 예배 공간을 넘어 사회적 만남의 장이 되기를 원했던 것이다. 이러한 역할을 확장한 공간이 바로 1971년에 문을 연 '조르주 베르나노스 센터(Centre universitaire Georges Bernanos)'였다.



교회 같지 않은 교회

이 교회가 유독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유는, 그 형태 때문이다. 거대한 목조 골조로 이루어진 외관은 전통적인 성당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르다. 어떤 이는 '노아의 방주'를, 또 다른 이는 '아브라함의 장막'을 떠올린다. 어떤 이에게는 손을 모은 형상으로, 또 어떤 이에게는 거북이처럼 보이기도 한다.


공식적인 설계 의도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37미터 첨탑의 수직선은 하늘과 인간을 잇는 상징으로 읽힌다. 첨탑에서 제단으로 이어지는 수직의 연속성은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온 신성의 화신’, 즉 ‘그리스도의 인간화’를 표현하는 비유로 해석되기도 한다.


내부 구조는 1960년대 포스트모던 건축 사조의 영향을 보여준다. 신자들이 앉는 좌석은 반원형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이는 성직자와 신자 사이의 위계를 지우려는 시도였다. 제단 위쪽의 목재 구조와 빛의 방향은 자연스럽게 상승하는 듯한 효과를 만든다. 노출 콘크리트로 지어진 외벽은 단단하면서도 거칠고, 벽돌 패턴은 제단을 향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교회는 종교 건축이자 하나의 무대 미술처럼 느껴진다.



베르나노스 센터의 사회적 유산

교회 바로 옆에는 ‘베르나노스 센터(Centre Bernanos)’가 있다. 이곳은 반세기 넘게 지역 공동체의 사회적 연대를 이어온 상징적인 공간이다. 건물 내부는 미로처럼 얽혀 있는데, 그 이유는 이곳 지하에 옛 급수탑의 잔해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탑의 잔해는 건물 내부에 ‘반 층’ 구조를 만들어 독특한 공간감을 형성한다. 흥미롭게도 교회의 제단은 바로 이 옛 급수탑의 폐허 위에 자리한다.


1971년 문을 연 베르나노스 센터는 처음에는 가톨릭 대학 사목회 공간으로 기획됐다. 기도 모임, 성경 연구, 강연 등이 열리는 장소였으며, 11개의 방을 갖춘 학생 기숙사 기능도 했다. 대학 캠퍼스와 가까운 지리적 이점을 살려, 문화적·지적 교류의 중심 역할을 했다.


오늘날 이 센터는 재정적 어려움을 겪는 학생을 지원하는 곳으로 기능이 확장됐다. 매주 수요일마다 식료품 꾸러미를 배분하고, 최근 몇 년간은 거리에서 보호받지 못한 미성년 난민 청소년들을 수용하고 있다. 

토마 벤더(Thomas Wender) 신부

이곳의 대표 신부이자 책임자인 토마 벤더(Thomas Wender) 신부는 “유럽의 난민 위기 속에서 길을 잃은 아이들이 이 문을 두드렸다”고 회상한다. 프랑스 정부의 제도적 지원이 부재한 상황에서, 센터는 스스로 이들을 맞이해 숙식과 교육을 지원했다. 지난 몇 년 동안 200명 이상의 청소년이 이곳을 거쳐 사회로 나아갔다. 지금도 센터는 기부를 통해 운영되며, ‘환대’라는 이름의 실천을 계속하고 있다.



도시를 새로 보는 시선

스트라스부르는 오랜 역사 속에서 켜켜이 쌓인 건축적 실험과 사회적 이상을 품은 도시다. 그리스도 부활 교회는 이 도시가 품은 근대의 실험 중 하나로, 종교적 상징과 사회적 연대, 그리고 예술적 모험이 결합된 사례다. 도시를 걷다 문득 고개를 들면, 이 첨탑은 여전히 하늘을 향해 묵묵히 서 있다. 낯설지만 단단한 그 형태 속에서, 스트라스부르의 또 다른 얼굴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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