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은한 단맛, 와인의 또 다른 얼굴
와인 세계는 흔히 드라이(dry)한 것과 단 것 사이에서 경계를 나눈다. 그러나 그 중간 어디쯤, 단맛이 주인공이 되되 결코 부담스럽지 않은 세계가 있다. ‘모엘르 와인(Vin Moelleux)’. 이름부터 부드럽다. 프랑스어로 moelleux는 ‘부드러운’, ‘말랑한’이라는 뜻을 갖는다. 말 그대로, 입안에서 유연하게 펼쳐지는 달콤함을 품은 와인이다. 모엘르 와인은 단순한 스위트 와인(sweet wine)과는 다르다. 당도는 대개 30~50g/L 정도. 혀끝을 찌르지 않고, 입 안에서 미끄러지듯 퍼지는 섬세한 단맛이 특징이다. 무엇보다도 이 단맛은 과일 향과 부드러운 산미와 조화를 이루며, 깔끔한 여운을 남긴다. 그러니까 '달다'는 말만으로는 다 담을 수 없는 구조와 밸런스를 갖춘 와인이다.
귀부 와인과는 다르다 – ‘의도된 단맛’의 세계
흔히 사람들은 달콤한 와인 하면 귀부 와인부터 떠올린다. 귀부 와인은 보트리티스 시네레아(Botrytis cinerea)라는 곰팡이에 의해 포도가 부분적으로 건조되며 자연스럽게 당이 농축된 결과물이다. 모엘르 와인은 이와는 조금 다르다. 귀부균을 활용하지 않거나, 아주 부분적으로만 영향을 받은 포도를 사용하며, 대부분의 경우 발효 과정에서 설탕이 모두 알코올로 바뀌지 않도록 일부러 멈춰 당을 남기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그 결과, 단맛은 있지만 과도하지 않고, 과일 고유의 향이 더욱 또렷하게 살아난다. 꿀처럼 끈적이지 않으면서도, 부드럽고 풍성한 향이 잔 안에서 차분히 퍼지는 식이다.
다양한 스타일, 다채로운 즐거움
모엘르 와인은 특정 품종이나 색에 국한되지 않는다. 주로 화이트 와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로제와 레드 스타일로도 얼마든지 만들어진다. 품종 역시 리슬링, 슈냉 블랑, 소비뇽 블랑 등 지역에 따라 다양하다. 각기 다른 떼루아에서 길러진 포도는 모엘르 스타일로 가공될 때 새로운 얼굴을 보여준다. 비슷한 표현으로 종종 혼동되는 ‘리큐르 와인(Vin Liquoreux)’도 있다. 둘의 차이는 당도에 있다. 리큐르 와인은 50g/L 이상의 높은 당도를 가지며, 대부분 귀부 와인이 여기에 포함된다. 좀 더 농밀하고 강렬한 단맛을 즐기고 싶다면 리큐르 와인이 어울리겠지만, 부드럽고 우아한 단맛을 원한다면 모엘르 와인이 제격이다.
식탁 위의 모엘르 – 섬세한 페어링의 미학
달콤한 와인은 디저트와만 어울릴 거라는 편견은, 모엘르 와인을 마셔본 이들 앞에선 쉽게 무너진다. 실제로는 디저트뿐 아니라 짭짤한 음식과의 페어링에서 오히려 더 빛난다. 푸아그라처럼 풍미가 진한 요리, 혹은 곰브랭 크림을 얹은 치즈와 모엘르 와인의 단맛은 대조 속에서 새로운 균형을 만들어낸다. 과일 타르트나 크렘 브륄레 같은 디저트와의 조합은 말할 것도 없고, 산미와 미묘한 단맛 덕분에 해산물이나 아시아 요리와도 색다른 어울림을 만들어낸다.
| 몬바질락 모엘르 와인 컬렉션(Collection vins moelleux Monbazillac) |
새로운 와인의 문을 열다
와인 세계에서 모엘르 와인은 아직 낯선 단어일 수 있다. 하지만 일단 한 잔을 마셔보면, 그 단맛이 결코 단순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단맛을 뛰어넘어, 부드러움과 정제된 향, 절제된 구조를 동시에 품고 있는 모엘르 와인은 와인 초심자부터 애호가까지 모두를 유혹한다. 입안에서 느껴지는 감각은, 때로 언어보다 더 설득력이 있다. 모엘르 와인을 처음 마시는 순간, '부드럽다(Moelleux)'는 말의 의미는 다시 쓰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