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라스부르 대성당을 깊이 있게 이해하기 위한 사실들 - 8가지

스트라스부르 대성당은 단순한 종교 시설을 넘어, 이 도시의 역사와 문화를 담고 있는 상징적인 존재다. 천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 고딕 양식의 걸작은 건축적 특징부터 흥미로운 역사적 사건들까지, 수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대성당을 더욱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8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소개한다. 



1. 독특한 건축적 특징

스트라스부르 노트르담 대성당은 2015년 천 년을 맞이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고딕 양식 대성당이다. 첨탑의 높이는 142미터로, 1874년까지 기독교 세계에서 가장 높은 첨탑으로 기록되었다. 1874년 이전에도 유럽에는 이보다 높은 첨탑이 있었지만, 대부분 자체 무게나 악천후, 특히 낙뢰로 인해 무너졌다. 현재 프랑스에서 가장 높은 대성당은 157m의 루앙 대성당(Cathédrale de Rouen)이며, 독일에도 이를 능가하는 대성당들이 존재한다.


이 대성당은 1015년 기초가 세워졌으며, 세계적으로도 독특한 방식으로 건설되었다. 진흙과 점토층 위에 나무 기둥을 박아 수로의 지하수층에 고정하는 구조인데, 20세기 초 라인강의 흐름을 조정하면서 지하수층이 낮아지자 이를 보완하기 위해 콘크리트를 주입하는 보강 작업이 이루어졌다.

스트라스부르 대성당 지하 기초



2. 사라진 두 번째 탑

대성당의 건설은 약 300년이 걸렸다. 원래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Notre-Dame de Paris)처럼 두 개의 사각형 탑을 계획했으나, 결국 두 탑 사이의 공간을 종루로 채운 뒤 북쪽 탑에 첨탑을 세웠다. 15세기 말, 두 번째 첨탑을 세우려던 계획은 재정 부족, 고딕 양식의 쇠퇴, 지반의 불안정 등으로 무산되었다. 19세기에 독일 건축가들이 새 프로젝트를 설계했으나 실행되지 않았다. 하나의 첨탑만 남아 알자스 평원과 독일까지 보이는 도시의 상징이 되었다.

스트라스부르 대성당 두 첨탑 계획도

스트라스부르 대성당 두 첨탑 상상도



3. 개신교 예배당으로 사용된 150년

1517년 종교 개혁이 시작되면서 스트라스부르는 개혁을 요구한 최초의 도시 중 하나였다. 1518년부터 루터의 비판적 논문이 교회 문에 게시되었고, 인쇄술 덕분에 이 책들은 빠르게 퍼져나갔다. 대성당은 1529년에 개신교 예배 장소로 사용되었고, 1532년 스트라스부르는 루터교에 합류했다. 이러한 변화는 개신교 지도자와 가톨릭 주교 사이의 실제 전쟁으로 이어졌다. 30년 전쟁 이후, 루이 14세는 1679년 스트라스부르를 점령하면서 개신교 지배를 종식시키고 대성당을 가톨릭 신자들에게 반환했다. 이후 대성당은 다시 가톨릭 성당으로 자리 잡았다.

오늘날 스트라스부르 대성당의 연례행사인 카톨릭과 개신교 합동 행사



4. 첨탑 위의 프리지아 모자

프랑스 혁명 당시, 대성당은 개혁파였던 자코뱅파(Jacobins)의 공격 대상이 되었다. 1793년, 혁명재판소는 첨탑이 "평등을 모욕한다"며 철거를 결정했다. 이를 막기 위해 대장장이 슈툴처(Stultzer)는 첨탑에 거대한 빨간색 프리지아 모자를 씌워 혁명의 상징으로 만들 것을 제안했다. 이 모자는 9년 동안 유지되었으며, 지역 주민들은 이를 '커피 워머(Kàffeewärmer)'라고 불렀다. 이 독특한 모자는 이후 시립 도서관에 보관되었으나, 1870년 독일군의 폭격으로 파괴되었다.

혁명 기간 동안 수백 개의 조각상이 파괴되었으며, 대부분의 종은 대포 제작을 위해 녹여졌다. 대성당은 '이성 숭배 사원(Temple de la Raison)'으로 변모했다가, 1801년 다시 가톨릭에 반환되어 1813년부터 본격적인 복원 작업이 시작되었다.




5. 19세기의 천문 시계

대성당의 대표적 명소 중 하나는 '천문 시계(L’horloge astronomique)'이다. 매일 오후 12시 30분, 자동 인형들이 움직이는 장면이 연출되며, 매년 약 300만 명의 관람객이 이를 보기 위해 방문한다. 이 시계는 시간, 세속 및 종교 달력, 천문학적 데이터를 표시하며, 2006년 3월 28일의 월식도 정확히 기록했다. 현재 가동 중인 천문 시계는 1842년 장바티스트 슈빌게(Jean-Baptiste Schwilgué)가 제작한 것으로, 그는 수학자이자 천문학자, 기계공으로 독학으로 명성을 쌓았다. 현재도 매주 월요일 시계공들이 점검하며 관리하고 있다.




6. 신비한 녹색 광선

매년 춘분과 추분 무렵, 대성당 내부에서는 신비로운 녹색 광선이 관측된다. 3월 말 오전 11시 38분과 9월 말 오후 12시 24분, 태양빛이 유다족장의 스테인드글라스를 관통하여 설교단 위 그리스도 조각상의 머리를 비춘다. 이 현상은 1972년 측량 엔지니어 모리스 로사르(Maurice Rosart)에 의해 발견되었으며, 그로부터 약 100년 전에 설치된 유리창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대한 창작자의 의도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신비로운 해석을 자아내며 논란을 낳고 있다.




7. 스테인드글라스와 복원 역사

스트라스부르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는 대부분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샤르트르 대성당(Cathédrale de Chartres)과 유사한 사례이다. 그러나 1945년 미군 폭격으로 후진부의 스테인드글라스가 파괴되었고, 1956년 유럽 평의회가 새로운 스테인드글라스를 기증했다. 




8. 과거 유대인에 대한 적대감의 흔적

스트라스부르 대성당의 밤 10시 종은 오늘날까지도 일부 시민들 사이에서 "유대인의 종"(la cloche des Juifs)으로 불린다. 이는 중세 시기 유대인들이 하루가 끝날 무렵 도시에서 쫓겨나야 했던 역사를 떠올리게 한다. 원래 이 종은 혁명 이전까지 성문이 닫히는 시간을 알리는 역할을 했으며, 이후에는 밤 10시에 통행금지를 알리는 신호로 사용되었다. 당시 시민들은 화재 예방을 위해 이 시간을 기점으로 모든 불을 꺼야 했다. 그러나 중세부터 프랑스 혁명에 이르는 기간 동안, 대성당의 플랫폼은 보다 직접적인 반유대주의적 용도로 활용되었다. 지역 당국은 이곳에서 "유대인의 뿔"(la corne des Juifs)을 불어, 스트라스부르에서 추방된 유대인들에게 성문이 닫히기 전에 떠나라는 명령을 전달했다. 이때 사용된 악기는 원래 유대교의 의식에서 사용되는 쇼파르(shofar)로, 1349년 포그롬(pogrom, 유대인 학살) 당시 회당에서 약탈된 것이었다.


대성당의 외벽에는 이러한 반유대주의의 흔적이 남아 있다. 대성당 정문 위에는 "승리한 교회와 눈이 먼 시나고그"라는 중세적 상징을 반영한 두 개의 조각상이 자리하고 있다. 이 조각상은 교회와 유대교(시나고그)를 여성의 모습으로 의인화하여 표현한 것으로,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의 양옆에 배치되어 있다. 유대교를 상징하는 인물의 얼굴은 뱀에 둘러싸여 있으며, 눈은 가려져 있다.

대성당 정문 위에는 '승리한 교회와 눈이 먼 시나고그'


또한 샤토 광장(Place du Château) 방향의 남쪽 포털에는 비슷한 조각상이 존재한다. 이곳에서도 또 다른 교회와 유대교 조각상이 마주 보고 있다. 교회는 당당하고 위엄 있는 모습으로 표현된 반면, 유대교는 허리가 굽고 눈이 가려진 채 묘사되어 있다. 이 같은 중세적 상징은 가톨릭교회에서 1960년대 중반 제2차 바티칸 공의회(Concile Vatican II) 이전까지 유지되었던 대체 신학(théologie de la Substitution)을 반영하고 있다. 당시 가톨릭교회는 기독교인들이 참된 하나님의 백성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도래 이후에도 유대교를 고수하는 것은 오류라고 해석했다.

현재까지 대성당의 이러한 조각상들에 대한 별도의 설명은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만약 설명이 추가된다면, 대성당 곳곳에 숨겨진 수많은 역사적 요소들에 대한 안내도 함께 제공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한편, 스트라스부르 관광청에서는 연중 내내 전문 가이드와 함께하는 대성당 투어를 운영하며,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는 기회를 마련하고 있다.

샤토 광장(Place du Château) 방향의 남쪽 포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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