슐마이스터(Schulmeister), 나폴레옹의 스트라스부르 첩보원
샤를-루이 슐마이스터(Charles-Louis Schulmeister, 1770-1853)는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인물이었다. 그는 담배 상인, 밀수업자, 갱단 두목, 첩보원, 군인, 경찰위원, 호화로운 연회를 여는 성주, 그리고 산업가였다.
그는 스트라스부르 레콜레(Récollets) 거리 3번지에서 밀수업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순한 "운반책"이었지만, 곧 라인강 양쪽을 아우르는 거대한 밀수 조직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그의 재능을 눈여겨본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훗날 경찰부 장관이 되는 '사바리(Savary)'였다. 그는 슐마이스터를 발탁하여 1805년부터 나폴레옹 황제를 위한 첩보원으로 활동하게 했다. 슐마이스터는 점차 황제의 가장 유능한 정보원이 되었다.
눈부신 첩보 활약
1805년, 오스트리아에서 이중첩자로 활동하며 거짓 정보를 흘려, 무려 4만 명 규모의 오스트리아군을 생포하도록 했다. 이 중 90%는 단 한 발의 총알도 쏘지 못한 채 항복했다고 한다. 같은 해, 대담하게도 오스트리아군의 전쟁 회의에 ‘재무관’ 행세를 하며 참석했다. 그 회의를 주재한 사람이 다름 아닌 프란츠 2세(François II), 즉 오스트리아 황제 본인이었다.
1806년, 단 13명의 기병을 이끌고 600명의 오스트리아군이 주둔한 마을에 야간 잠입했다. 그는 15명의 장교를 생포한 후, 그 기세를 몰아 전체 수비대를 항복시켰다.
1809년, 첩보 활동이 탄로 나 체포된 후 사형을 선고받았다. 처형 전날 밤, 그는 자신을 감시하던 병사 중 한 명이 프랑스군 탈영병임을 알아챘다. 그는 이 병사와 대화를 나누며 돈으로 매수했다. 그리고 포도주를 가져오게 하고, 경비병들과 함께 술을 마셨다. 그러다 술에 몰래 아편을 타서 그들을 취하게 만든 뒤, 경비병의 옷을 빼앗아 입고 탈출했다.
스트라스부르의 메노 구역
슐마이스터는 스트라스부르에서 약 20km 떨어진 곳에서 태어났으며, 알자스 여성과 결혼했다. 그는 밀수업과 첩보 활동으로 엄청난 부를 축적했는데, 특히 오스트리아와 프랑스로부터 동시에 급여를 받는 구조였다. 1806년에 슐마이스터는 광대한 영지를 사들이고 ‘마인 아우에(Meine Aue, 나의 초원)’라 이름 붙였다. 이 이름이 오늘날 메노(Meinau) 구역의 어원이 되었다.
| 슐마이스터 성(Château de Schulmeister)의 모습 |
그는 이곳에 웅장한 슐마이스터 성(Château de Schulmeister)을 짓고, 넓은 공원을 조성하여 화려한 사교 생활을 즐겼다. 그의 저택은 알자스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거처 중 하나로 손꼽혔다. 그러나 1815년, 나폴레옹이 퇴위하면서 그의 운명도 기울기 시작했다. 그는 몇 차례 잘못된 투자를 한 끝에 결국 성을 설탕 공장으로 개조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유지할 수 없게 되자 전 재산을 매각했다. 그는 스트라스부르 브로글리 광장(Place Broglie)의 작은 아파트에서 생을 마감했고, 스트라스부르 중심지의 Saint-Urbain 공동묘지에 묻혔다.
| St Urbain 묘지(Rivétoile 맞은편)의 그의 무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