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겐토라툼(Argentoratum)의 전투와 잃어버린 제국의 기억

아르겐토라툼(Argentoratum)의 전투와 잃어버린 제국의 기억

서기 357년, 오늘날의 스트라스부르 일대에서는 로마 제국의 운명을 가를 전투가 벌어졌다. 역사 속에서는 ‘스트라스부르 전투(Bataille de Strasbourg)’로 알려진 아르겐토라툼 전투(Bataille d’Argentoratum). 이 전투는 로마 황제 율리아누스 카이사르(César Julien)가 지휘한 서부 로마군과 게르만족 알라만인(Alamans) 왕 크노도마르(Chnodomar)가 이끄는 병력이 맞붙은 대결이었다.

당시 로마군은 수적으로 열세였으나, 율리아누스의 치밀한 전략과 군단의 조직력으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병력 손실은 미미했고, 알라만 군은 막대한 피해를 입은 채 라인 강(Rhenus) 건너로 물러났다. 이 승리로 율리아누스는 355년부터 이어온 갈리아(Gaule) 지역 원정의 절정기를 맞았다. 내전으로 무너졌던 라인 강의 로마 방어선은 다시 복원되었고, 게르만족은 로마의 종속국으로 재편되었다.

아르겐토라툼(Argentoratum) 전투 배치도


율리아누스의 전설, 그리고 그를 기록한 이들

아르겐토라툼 전투의 생생한 기록은 로마 장교 출신 역사학자 '아미아누스 마르켈리누스(Ammianus Marcellinus)'의 저술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율리아누스 황제를 직접 보좌한 인물로, 갈리아 전선의 경험을 바탕으로 세밀한 묘사를 남겼다. 다만 그의 기록은 율리아누스의 자필 선전문을 토대로 한 부분이 많아, 일부 내용의 과장 가능성도 지적된다.

이후 비잔티움의 역사가 '조시무스(Zosimus)'는 『노바 히스토리아(Nova Historia)』에서 율리아누스 시대를 다시 조명했다. 그는 율리아누스의 전투보다는 350년에서 353년 사이 마그넨티우스(Magnentius)의 반란을 중심으로 서술했으나, 잃어버린 로마의 기억을 복원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율리아누스의 죽음 이후, 수사학자 '리바니오스(Libanius)'는 363년에 그를 추도하는 장송문을 남겼다. 비록 역사적 정확성은 떨어지지만, 그의 글은 율리아누스의 인격과 전쟁의 분위기를 인간적인 시선으로 보여준다. 율리아누스 자신 또한 라인 강 원정을 회고하는 『아테네인들에게 보내는 서간(Missive aux Athéniens)』을 남기며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드러냈다.

로마 시대 라인강 지역의 전쟁 묘사


아르겐토라툼의 몰락, 그리고 새로운 시대

로마의 빛이 사라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4세기 말, 알라만족의 잇따른 침입으로 아르겐토라툼은 반복적으로 파괴되었다. 첫 번째 침공은 약 380년경에 일어났다. 도시 일부가 불탔지만 로마군은 알자스(Alsace) 지역 대부분을 지켜냈다. 그러나 407년 겨울, 라인 강이 얼자 상황은 달라졌다. 반달족(Vandales)과 게르만 부족들이 강을 건너 알자스를 점령했고, 로마의 지배는 사실상 종말을 맞았다. 408년 무렵 새 행정관이 잠시 요새를 재건했으나 오래가지 못했다.

415년경, 성 에티엔(Saint-Étienne) 교회 아래에 세워진 로마 바실리카가 기독교 예배당으로 전환되었다는 기록은, 쇠락 속에서도 신앙의 흔적이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마지막 결정타는 451년, 훈족의 왕 아틸라(Attila)의 침입이었다. 그의 군대가 라인 강을 넘어오며 아르겐토라툼을 완전히 불태웠고, 도시는 회복되지 못했다. 이후 알라만족의 지배 아래에서 지역 언어는 켈트어와 라틴어에서 알레마니어(Alemanique)로 바뀌었다.

580년경, 역사가 그레고리우스(Gregorius)는 이곳을 '스트라테부르(Strateburg)'라고 기록하며, 로마적 유산이 게르만적 도시로 전환되었음을 보여주었다. 이 이름이 훗날 '스트라스부르(Strasbourg)'의 어원이 된다.

아르겐토라툼 전투의 주요 인물인 아틸라(Attila)


전투가 남긴 것

아르겐토라툼 전투는 단순한 승리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율리아누스에게 그것은 로마 이상을 복원하려는 마지막 시도였고, 이후의 몰락은 제국의 변화를 상징한다. 한때 제국의 경계였던 라인 강은 세월이 지나며 문명의 경계가 되었고, 오늘날 스트라스부르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다. 로마의 흔적과 게르만의 언어가 공존하는 도시, 바로 그 시작점이 아르겐토라툼이었다.

357년, 로마 황제 율리아누스 아포스타타와 크노도마르 왕이 이끄는 알레만니족 간의 전투. 기병과 보병 간의 전투 (1692년 인쇄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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