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라스부르에서 탄생한 프랑스 국가, '라 마르세예즈'

스트라스부르에서 탄생한 프랑스 국가 찬가, '라 마르세예즈'

프랑스의 국가(國歌) '라 마르세예즈(La Marseillaise)'는 단순한 애국가를 넘어 프랑스 혁명의 정신을 담은 상징적인 노래다. 하지만 이 국가의 이름에 특정 지역, '마르세유'가 포함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 노래는 사실 1792년 스트라스부르에서 처음 만들어졌다. 그렇다면 왜 '스트라스부르의 노래'가 아닌 '라 마르세예즈'가 되었을까?

1792년 스트라스부르 시청에서 처음으로 라 마르세예즈를 부르는 루제 드 리슬 (1849년 그림)


프랑스 혁명과 '라 마르세예즈'의 탄생

1792년 4월 20일, 프랑스 혁명 정부는 오스트리아에 선전포고를 했다. 혁명의 이상을 지키기 위해 전쟁에 돌입한 것이다. 이 소식이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4월 25일 밤, 스트라스부르에 주둔하던 군부대를 위해 클로드 조제프 루제 드 릴(Claude Joseph Rouget de Lisle) 대위가 즉흥적으로 작곡한 노래가 바로 '라 마르세예즈'였다. 원래 제목은 '라인 군대를 위한 전쟁가(Chant de guerre pour l'armée du Rhin)'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혁명군 사이에서 빠르게 퍼져나갔다. 특히, 마르세유에서 조직된 의용군이 이 노래를 부르며 파리로 행진하자 사람들은 이 곡을 '라 마르세예즈'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1795년 7월 14일, 이 노래는 공식적으로 프랑스 국가로 지정되었다.

라 마르세예즈가 작곡된 스트라스부르 중심가(Grand rue)의 집


혁명의 함성을 담은 가사, 그리고 논란

'라 마르세예즈'는 단순한 군가가 아니었다. 가사는 혁명의 이상을 강렬하게 표현했으며, 억압에 맞서 싸우는 혁명군의 투지를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그 강렬함이 때로는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특히 다음과 같은 가사가 문제의 중심이 되어왔다. 


Aux armes, citoyens, 

Formez vos bataillons, 

Marchez, marchez, 

Qu'un sang impur Abreuve nos sillons!

무기를 들라 시민들이여,

대오를 갖추어라,

행군하라, 행군하라,

불순한 피가 우리의 밭을 적시도록!


이 가사는 당시 혁명군이 왕당파와 외세에 맞서 싸워야 했던 격렬한 투쟁을 반영하는 것이었지만, 현대의 시각에서는 폭력적이라는 비판도 받고 있다. 특히 평화와 인권을 강조하는 오늘날의 가치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다. 이에 따라 일부 공식 행사에서는 전체 가사를 부르지 않고 특정 구절만 생략하기도 한다.




현대 프랑스에서 '라 마르세예즈'의 의미

오늘날에도 '라 마르세예즈'는 프랑스 국민의 정체성과 자긍심을 상징하는 노래로 남아 있다. 프랑스의 공식 행사뿐만 아니라, 스포츠 경기나 국제 행사에서도 흔히 들을 수 있다. 그러나 이 노래에 대한 해석과 논의는 계속되고 있다. '라 마르세예즈'는 단순한 국가(國歌)를 넘어, 프랑스가 걸어온 혁명의 역사와 자유, 평등, 형제애라는 이상을 담은 문화유산이다. 스트라스부르에서 탄생했지만, 프랑스 전역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도 자유와 독립을 상징하는 노래로 자리 잡은 것이다. 




작곡가 루제 드 릴, 그리고 그의 유산

'라 마르세예즈'를 작곡한 클로드 조제프 루제 드 릴(Claude Joseph Rouget de Lisle, 1760~1836)은 본래 군인이자 음악가였다. 혁명 정신을 담은 곡을 작곡했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는 혁명의 급진화 과정에서 투옥되기도 했다. 결국 그는 조용한 삶을 살다가 1836년 세상을 떠났다.

클로드 조제프 루제 드 릴(Claude Joseph Rouget de Lisle, 1760~1836)


하지만 그의 유산은 오늘날까지도 프랑스 국민들에게 강렬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라 마르세예즈'는 단순한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여전히 프랑스의 혁명 정신과 자유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스트라스부르에서 시작된 이 노래는 마르세유를 거쳐, 오늘날 프랑스 전역을 넘어 세계 곳곳에서 불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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