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부아(Savoie)의 한국인 와인생산자, 도멘 아쉬(Domaine H)

프랑스에서 포도밭을 일군 한국인 와인메이커 하석환

프랑스 알프스의 자락, 사부아(Savoie) 지방의 토르메리(Torméry) 마을에는 최근 조용한 변화를 일으키는 한 와인 생산자가 있다. 한국 출신의 하석환. 그는 오랜 시간 프랑스에서 소믈리에로 일하다가 포도밭으로 무대를 옮겼다. 도멘 아쉬(Domaine H)라는 이름으로 새 삶을 시작한 그의 도전은, 전통적인 프랑스 와인 세계 속에서 이방인의 이름이 어떤 울림을 만들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다.


하석환이 인수한 포도밭은 사부아의 명산지 쉬냉(Chignin) 언덕의 역사 깊은 밭이다. 점토와 석회가 섞인 토양이 특징이며, 이 지역 특유의 광물감과 신선함을 담은 와인을 생산하기에 이상적인 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는 농약과 화학 비료를 배제한 생물학적 농법(agriculture biologique)을 실천하며, 자연 상태에 가까운 포도 재배를 지향한다. 수확 시기는 포도가 완전한 성숙에 이르렀을 때를 기다리며, 그가 말하는 ‘적정한 순간’에 맞춰 진행된다.

도멘 아쉬의 양조 방식은 단순하지만 철저하다. 발효와 숙성은 오로지 스테인리스 탱크에서 이루어진다. 이는 과실의 생동감과 산뜻한 향을 그대로 살리기 위함이다. 여과나 정제는 하지 않으며, 황(SO₂)은 필요할 때만 최소한으로 사용한다. 결과적으로 하석환의 와인은 ‘손대지 않은 순수함’을 지향한다.

그의 철학은 경험에서 비롯됐다. 하석환은 프랑스 자연주의 와인의 대부로 불리는 피에르 오베르누아(Pierre Overnoy)와 그의 제자 마뉘 율리옹(Manu Houillon)이 있는 퓌필랭(Pupillin)의 도멘에서 1년간 일하며 자연 발효의 본질을 체득했다. 또한 리옹(Lyon) 6구의 미슐랭 레스토랑에서 소믈리에로 근무하며 미식과 와인의 관계를 깊이 이해했다. 이 이력은 그의 와인에 섬세한 균형감과 미감적 완성도를 더한다.


현재 도멘 아쉬에서 생산하는 주요 와인은 사부아 토착 품종인 자께흐(Jacquère) 100%로 만든 화이트 와인이다. 첫 빈티지임에도 현지 와인 애호가들의 주목을 받았고, 프랑스 내 직구 플랫폼 ‘프랑스와요’(Francewayo)를 통해 판매된 물량은 빠르게 품절됐다. 국내 정식 수입도 예정돼 있어 머지않아 한국 소비자들도 그의 와인을 맛볼 수 있을 전망이다.



쉬냉의 가파른 언덕 위, 돌과 바람, 그리고 손끝의 감각으로 길러낸 도멘 아쉬의 와인은 단순한 한 병의 와인을 넘어선다. 그것은 한 한국인의 뿌리 깊은 열정이 프랑스의 대지와 만난 결과이자, 국경을 넘어선 장인정신의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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