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니히툼(Pfennigturm), 사라진 스트라스부르의 보물탑


한때 스트라스부르의 중심부를 굳건히 지켰던 펜니히툼(Pfennigturm)은 이제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는 사라진 유산이다. 과거 클레베르 광장(Place Kléber)에 자리 잡고 있었던 이 탑은, 현재의 오베트(Aubette) 건물 근처(한때 프리쥐니크(Prisunic)나 모노프리(Monoprix)로 불리던 방향)에 위치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그 자취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펜니히툼이 세워지기 전, 그 자리는 '링부르크문(Ringburgtor)'이라는 성문이 지키고 있었다. 이 문은 14세기 초까지 도시 성벽의 일부로 남아 있었으나, 1321년 철거되면서 새로운 건축물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도시의 고위 관리들은 귀중한 보물과 문서를 안전하게 보관할 장소를 마련하고자 했고, 그렇게 해서 '펜니히(당시 화폐 단위)의 탑', 즉 펜니히툼이 탄생했다.

15세기 스트라스부르의 주화


이 웅장한 탑은 3층 규모로, 사실상 도시의 거대한 금고였다. 기단부에는 두 개의 커다란 문이 있어 시민들이 탑 아래를 통과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으며, 내부에는 커다란 잠금장치가 달린 장식장이 놓여 있었다. 이곳에는 금과 보석이 담긴 상자뿐만 아니라, 도시의 중요한 문서, 특권 증서, 헌장 등이 보관되었다. 특히, 대형 '성모 마리아 깃발'은 도시의 자긍심을 상징하는 보물이었으며, 신성 로마 제국 황제의 대관식이나 전투에서 스트라스부르를 대표하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깃발은 1789년 프랑스 혁명 당시 혁명군에 의해 파괴되었다.

스트라스부르 도시를 상징하는 '성모 마리아 깃발'


이 탑에 보관된 보물 중에서도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당시 알려진 것 중 가장 거대한 유니콘 뿔이었다. 길이가 무려 7미터 이상이었던 이 뿔은 1565년 '앤트워프(Antwerpen)'에서 거액을 주고 구입된 진귀한 유물로, 전염병으로부터 도시를 보호하는 신비한 힘을 지닌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그것이 실제로는 일각고래(나르발, Narval)의 뿔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중세 시대의 신화적 상상력과 현실이 맞부딪히는 지점이라 할 수 있다.


1414년, 펜니히툼의 운명을 뒤흔든 사건이 발생했다. 번개로 인해 화재가 발생하면서 3층이 전소된 것이다. 이후 복구 작업이 진행되었고, 원래 구조 위에 한 층을 더 올린 뒤, 꼭대기에 '성곽식 난간(platform crénelée)'을 추가했다. 또한 네 개의 모서리에는 작은 탑이 세워졌고, 내부에는 나선형 계단이 설치되었다. 탑의 정상에는 커다란 석재 테이블이 놓였는데, 이곳은 스트라스부르의 연례 대연회가 열리는 특별한 공간이었다. 당시 도시의 20개 직능 조합(통 제작자, 선원, 제빵사, 무두장이 등)의 대표들이 모여 각자의 저장고에서 가져온 최고급 와인을 곁들여 성대한 연회를 즐기곤 했다.


그러나 이처럼 화려했던 펜니히툼도 영원할 수는 없었다. 18세기에 들어서면서 도시의 변화와 함께 철거가 결정되었고, 1768년 오베트 건물이 세워지기 직전 사라진 것으로 추정된다. 탑에 보관되어 있던 보물들은 구텐베르크 광장(Place Gutenberg)으로 옮겨졌으며, 오늘날 스트라스부르 상공회의소(CCI, 건물명: 노이바우, Neubau)가 위치한 건물에서 다시 새로운 보관처를 찾았다.


한때 스트라스부르의 심장부를 지키던 펜니히툼은 이제 지도에서도, 도시의 풍경에서도 사라졌지만, 그 역사는 여전히 남아 있다. 현대의 스트라스부르를 거닐며 이 오래된 탑이 서 있던 곳을 상상해보는 것도, 사라진 유산을 기억하는 하나의 방식이 아닐까.


다음 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