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라스부르, 1290년 건축된 주택서 중세 프레스코화

스트라스부르, 1290년 건축된 주택서 중세 프레스코화 발견

스트라스부르(Strasbourg, 바랭) 도심에 현존하는 가장 희귀한 문화유산 중 하나인 중세 프레스코화가 기적적으로 보존 상태를 유지한 채 발견됐다. 1450년경으로 추정되는 이 벽화는 일체의 복원 작업을 거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색채의 생동감을 간직하며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인상을 준다. 수수께끼를 품은 이 회화 유산은 현재까지도 일반 대중에게는 접근이 엄격히 통제되고 있다.

'석류를 든 여인' 그림


오래된 저택의 벽 뒤에서 드러난 500년의 비밀

프레스코화가 발견된 시점은 1987년 3월, 스트라스부르 중심가 쥐프 거리(rue des Juifs) 15번지에서 진행된 12세기 건축물 리노베이션 공사 중이었다. 당시 작업자들은 가벽, 가짜 천장, 그리고 낡은 석고벽을 제거하고 있었다. 돌연 내부 칸막이벽 뒤편에서 석류에 둘러싸인 아름다운 귀부인의 얼굴이 출현했다. 500년간 은폐되어 있던 온전한 형태의 프레스코화였다. 전문가들은 메스(scalpel)를 이용해 벽을 덮고 있던 회반죽을 조심스럽게 제거하며 놀라운 일련의 회화 작품들을 층층이 발굴했다. 이는 중세 주택의 장식에 사용된 마지막 민간 회화 작품으로, 궁정 생활, 여가, 종교적 논쟁 장면 등을 묘사하고 있는 극히 드물고 예외적인 역사적 증거로 평가된다.

뵈클린 가문의 문장


겉모습과 상반되는 '스트라스부르에서 가장 오래된 주택'

스트라스부르 도심 거리에 면한 이 건물은 평범한 외관으로 인해 이러한 역사적 보물을 품고 있을 것이라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 전통적인 목골 구조(colombages)나 화려한 장식 없이 현대적으로 보이는 출입구를 가진 이 건물은 1290년에 건축된 개인 저택이다. 알자스 지역사 연구가인 로베르 베차(Robert Betscha)는 이 건물을 "스트라스부르에서 가장 오래된 집"이라 단언한다.

저택은 1349년 2월 14일 유대인 학살(Judenbrand) 직후 스트라스부르의 유력자들에게 압류될 때까지 알자스 지역 유대인 가문 소유였다. 이후 여러 손을 거쳐 1450년경 알자스 귀족 가문 중 가장 유력했던 뵈클린 드 뵈클린사우(Boecklin de Boecklinsau) 가문에 귀속됐다. 이 가문이 건물을 개조해 현재의 내부 구조를 확립한 것으로 보인다. 해당 사실은 벽에 남아있는 30년간 스트라스부르 자유 시의 최고 행정관(슈테트마이스터, Stettmeister)을 역임한 장 뵈클린(Jean Boecklin)의 문장(armoiries)을 통해 의심의 여지 없이 확인된다고 역사학자 베차 교수는 설명했다.

천장의 그림


뵈클린 가문의 부를 과시했던 12미터의 천장화

이 유산의 정점은 단연 천장화다. 12미터에 달하는 천장 전면에는 붉은색과 푸른색의 장미 및 꽃무늬가 교차하며 결혼을 상징하고 있다. 이러한 예술적 성과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년의 작업 기간과 막대한 재정 투자가 필요했을 것으로 분석된다.

벽에 묘사된 장면들은 더욱 수수께끼 같다. 옛 벽난로 주변에는 미확인 도시의 모습과 탑이 그려져 있다. 투석구(fronde)로 보이는 물체를 든 남자가 거구를 겨누는 장면은 성서의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로 추정된다. 우측에는 음악을 연주하는 뮤즈들, 그 옆에는 늙은 훈육관이 철없는 젊은이를 훈계하는 모습이 포착된다. 방 구석에서는 두 거인이 논쟁하는 듯하며, 그중 한 인물의 큰 코는 고대부터 존재했던 반유대주의를 상징하는 도상으로 해석된다.

방 중앙에는 옥좌에 앉아 쿠션에 기대앉은, 젊고 빛나는 '석류를 든 귀부인'(dame aux grenades)이 장엄한 모습으로 자리한다. 알자스에서는 재배되지 않는 지중해성 과일인 석류는 다산을 상징하며, 베차는 이 인물이 저택 주인의 아내나 딸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러한 프레스코화의 제작 목적은 명확하다. 손님들을 압도하는 것이다. 후대에 설치된 가벽이 사라지자, 이곳은 거대한 리셉션 홀의 모습이 드러났다. 벽화는 단순한 장식 기능을 넘어 소유주의 부와 명성을 과시하는 수단이었으며, 당시 방문객들에게는 하나의 장대한 볼거리로 작용했다.



재발견된 유산, 보존을 위한 접근 통제

뵈클린 가문 이후 저택은 요함 드 문돌스하임에게 소유권이 이전되었고, 이 이름이 건물에 최종적으로 남았다. 유행이 바뀌면서 프레스코화는 회반죽, 석고, 가짜 천장 등으로 점차 덮였고, 리셉션 홀은 여러 개의 아파트로 분할되며 그림들은 망각 속에 묻혔다. 현재 이 저택은 시 소유이며, 예금금고(Caisse des Dépôts)의 기부와 복원 작업을 거쳐 지역 법 연구소(Institut du droit local, IDL) 및 문화유산 보존 관련 협회들의 사무실로 활용되고 있다. 이처럼 문화유산의 보존을 위해 현재 일반 대중과 스트라스부르 시민들은 프레스코화에 접근할 수 없다. 전문가들과 역사학자들은 석고벽에서 노출된 이 뵈클린 가문의 중세 회화가 외부 오염으로 인해 악화될 가능성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저택에서 바라본 앞 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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