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자스 그라우프탈의 바위 주택

바위 속에서 잠들고, 살고, 일하다

알자스 북부의 보주(Vosges) 산맥 지역 자연공원 안, 그라우프탈(Graufthal) 마을에는 분홍빛 사암 절벽 속에 자리 잡은 특별한 형태의 반(半)동굴 주택들이 있다. 그들의 외벽은 하늘색 회벽으로 칠해져 있어 산의 붉은빛과 뚜렷한 대비를 이룬다. 이곳 사람들은 그것을 ‘메종 데 로셰(Maisons des Rochers, 바위의 집들)’ 이라고 부른다.



소설 속에도 등장한 ‘바위의 집들’

‘바위의 집들’은 실제로 장관을 이룬다. 이들은 높이 33미터의 사암 절벽, 호흐펠젠(Hochfelsen, 알자스어로 ‘높은 바위’) 에 새겨지듯 지어졌다. 인근 모젤(Moselle) 지방의 팔스부르(Phalsbourg) 와 그랑솔다(Grand-Soldat) 출신 작가 에밀 에르크만(Émile Erckmann) 과 알렉상드르 샤트리앙(Alexandre Chatrian) 은 이곳을 자신들의 애국적 소설 무대로 삼았다. 그들의 작품 『브리가디에 프레데리크(Le Brigadier Frédéric, 1874)』 와 『망명자(Le Banni, 1883)』 에서 이 바위의 집들이 묘사된다. 1872년 창립된 클뤼브 보주앵(Club Vosgien) 은 이곳에서 첫 도보 여행을 조직했다. 

언제나 그렇듯, 이 신비로운 장소는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힘을 지녔다. 2023년에는 약 2만5천 명이 ‘바위의 집들’을 찾았는데, 역대 최고 기록이었다. 프랑스인은 물론, 독일·벨기에·네덜란드 관광객도 많았다.



모든 ‘바위의 집들’은 내부 관람이 가능하다

연결된 모든 동굴 주택은 내부를 공개하고 있다. 1958년 이후로 거의 변한 게 없다. 온도는 연중 일정하게 약 10도 정도를 유지하며, 집 안의 오래된 물건들은 마치 어제까지도 사용된 듯하다. 단 한 채만이 전기를 갖추고 있는데, 이는 20세기 초 행인들이 주인에게 동전을 주고 구경할 수 있도록 설치한 것이다. 생활은 매우 단출했다. 침대 하나, 부엌 도구 몇 개, 작은 식탁과 의자 몇 개. 바위 안의 차갑고 습한 작은 공간은 냉장고 역할을 했다. 방은 여러 가족이 함께 사용했다.



마을 위 7미터 절벽에 매달린 주거지

이 동굴 주택들은 수평으로 갈라진 두 개의 암석 틈에 서로 맞물려 있다. 마을에서 7미터 높이에 자리한 첫 번째 절벽 틈에는 주택들이, 그 위의 더 좁은 틈에는 성냥 공장이 있었다. 현재 이 상층부는 안전 문제로 일반에 공개되지 않지만, 아래쪽 ‘바위의 집’ 한 곳에는 성냥 제조 역사에 관한 상설 전시가 마련되어 있다.

건물들은 모두 바위에 직접 맞춰 지어졌으며, 돌무더기를 쌓은 벽돌 구조다. 절벽이 지붕을 완전히 덮지 못한 부분에는 ‘비베르슈반츠(biberschwantz)’, 즉 ‘비버 꼬리 모양 평기와’가 간단한 목조 구조 위에 올려져 방수 역할을 했다.

고고학자들과 역사학자들이 이곳의 최초 거주 흔적을 찾으려 했지만, 구체적 증거는 없다. 마을 사람들은 “선사시대부터였다”고 말하지만, 이를 입증할 물적 자료는 없다.



수도원에서 시작된 마을, 바위 속으로 이어진 삶

그라우프탈 마을은 11세기 수도원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절벽 아래에 위치한 수도원의 유적은 오늘날 발굴 작업을 통해 점차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조금 더 높은 곳의 동굴들은 처음에는 수도사들의 창고로, 이후에는 주거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1899년 고고학자 로베르 포레르(Robert Forrer) 의 연구에 따르면, 18세기 들어서야 최초의 벽돌공사가 이루어졌으며, 동굴의 입구를 막는 형태의 벽체가 세워졌다. 이러한 건축 방식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경제적으로 유리했다. 바위 자체가 바닥·천장·벽의 역할을 했기 때문에, 몇 개의 큰 돌만으로도 주거 공간을 완성할 수 있었다. 남향의 높은 위치 덕분에 햇볕을 받으며, 진젤(Zinsel) 계곡의 잦은 홍수로부터 안전했다.

하지만 이러한 임시적 구조물은 세월이 지나면서 불안정해졌다. 1931년에는 한 집의 지붕이 무너져 거주민이 대피했고, 그 후로 마을은 점차 버려졌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단 한 명의 주민만 남았다. 그녀의 이름은 카트린 오테르만(Catherine Otterman), 사람들은 그녀를 ‘펠제케트(Felsekaeth, 알자스어로 ‘바위의 카티’)’ 라 불렀다. 그녀의 이야기는 알자스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가수이자 유머리스트 위게트 드라이카우스(Huguette Dreikaus) 도 그중 한 명이었다. 그녀는 1958년, 8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카트린 오테르만(Catherine Otterman)


‘바위의 집들’의 성냥 공장

이 작은 집들에는 한때 세 가족까지 함께 살았다. 대부분은 생계를 이어가기 어려운 여성들이었고, 구걸 대신 생업을 선택했다. 마을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들은 “1845년경 이 주택 위쪽에 생긴 성냥 공장”에서 일했다. 

지금도 바그너(Wagner) 가문이 살았던 집 위로 세 개의 작은 창문이 일렬로 나란히 있다. 그곳이 바로 ‘헬젤파브릭(Helzelfawrick, 알자스어로 ‘성냥 공장’) 이었다. 현재 협회는 원래의 진입로를 복원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주변 마을에도 많은 성냥 공장이 있었다. 그곳에서 일하면 약간의 부수입을 얻을 수 있었지만, 인이 함유된 성냥 제조는 건강에 매우 해롭고 폭발 위험도 높았다. 이러한 화학 성냥 제조는 1870년 이후 프랑스 전역에서 금지되었으나, 당시 그라우프탈이 속해 있던 독일 제국(Deutsches Kaiserreich) 에서는 부분적으로 계속 운영되었다.

성냥공장의 흔적


방문 안내

  • 그라우프탈의 ‘바위의 집들’은 매년 3월 중순부터 11월 중순까지 매일 개방된다.
  • 입장료는 성인 4유로, 할인 요금 2유로, 12세 미만 무료이다.
  • 하마우(hameau, 작은 마을) 아래쪽에서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입구에 도착할 수 있다.
  • 석조 계단을 오르면 안내소로 쓰이는 작은 집이 나오고, 이어지는 난간과 통로는 절벽 추락을 방지하기 위해 설치되어 있다.
  • 관람 시간은 관람객의 관심도에 따라 30분에서 1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된다.


Maisons des rochers de Graufth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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