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고뉴의 선구자, 필리프 파칼레
부르고뉴 와인 세계에서 필리프 파칼레(Philippe Pacalet)는 분명한 인물이다. 무뚝뚝한 유머, 타협하지 않는 원칙, 강한 개성으로 호불호가 갈린다. 미식가들 사이에서는 그의 병이 빠르게 사라지지만, 그의 철학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불편한 존재이기도 하다. 그 양면성이 오히려 그의 이름을 더 또렷하게 만든다.
보느의 작은 골목에서 시작된 세계적 명성
부르고뉴 보느(Beaune) 역 인근의 조용한 골목에는 파칼레의 양조장이 자리한다. 화려한 건물도, 대형 간판도 없다. 거리에서 겨우 보이는 작은 표지판이 전부다. 그는 방문객을 바로 맞이하지 않는다. 창 너머에서 상대를 살피는 듯한 태도는 경계처럼 보이지만, 대화를 시작하면 금세 솔직함으로 바뀐다. 이 이중적인 인상이 바로 파칼레라는 인물의 특징이다.
지난 20여 년 동안 그는 브라질 출신의 아내 모니카(Monica)와 함께 와이너리를 일궈왔다. 모니카는 상업 부문을 책임지는 핵심 인물이다. 이 부부가 만든 와인은 현재 일본을 비롯한 세계 유수의 레스토랑에서 취급된다.
보졸레에서 시작된 자연주의의 계보
파칼레는 1962년 보졸레(Beaujolais)에서 태어났다. 현재도 그는 명성 높은 물랭아방(Moulin-à-Vent) 아펠라시옹에 약 1헥타르의 포도밭을 보유하고 있다. 그의 배경에는 하나의 흐름이 있다.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에 걸쳐, 기 브르통(Guy Breton), 장 포이야르(Jean Foillard), 마르셀 라피에르(Marcel Lapierre) 같은 생산자들이 화학 농법에 반기를 들었다. 라피에르는 그의 삼촌이다.
이 움직임은 프랑스 자연주의 와인의 정신적 중심 인물인 쥘 쇼베(Jules Chauvet)와 자크 네오포르(Jacques Néauport)를 중심으로 확산됐다. 이들은 황을 첨가하지 않고, 토착 효모만을 사용하는 양조를 제안했다. 파칼레는 이런 환경 속에서 자랐고, 이후 디종(Dijon)에서 쥘 쇼베와 함께 양조학을 공부했다. 그는 쇼베를 뛰어난 미각과 철저한 작업 윤리를 지닌 인물로 기억한다. 이 경험은 개입을 최소화하고 과실과 테루아를 존중하는 그의 철학을 형성했다.
로마네 콩티에서 배운 실전
이론을 익힌 뒤, 그는 현장으로 향했다. 1991년, 앙리 프레데릭 로슈(Henri-Frédéric Roch)와의 만남이 결정적이었다. 로슈는 로마네 콩티 도멘(Domaine de la Romanée-Conti)의 공동 운영자이자, 뉘 생 조르주(Nuits-Saint-Georges)에서 프리외레 로슈(Prieuré-Roch)를 설립하던 시기였다. 파칼레는 젊은 양조학 졸업생에서 곧바로 도멘 운영 책임자가 됐다. 그는 포도밭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고, 로슈는 전적인 신뢰를 보냈다. 약 10년간의 이 경험은 그의 스타일을 확립하는 시기였다.
2001년, 그는 네고시앙-양조가라는 길을 선택했다. 토지를 소유하기보다, 엄선한 포도를 매입해 직접 양조하는 방식이다. 그 결과, 제브레 샹베르탱(Gevrey-Chambertin), 퓔리니 몽라셰(Puligny-Montrachet), 그리고 보졸레까지 다양한 명망 있는 아펠라시옹을 다룰 수 있게 됐다. 그의 역할은 명확하다. 땅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포도의 품질과 결과물에 책임지는 것이다.
파칼레 방식, 세 가지 원칙
파칼레의 양조는 단순하다. 그러나 흔들리지 않는다. 핵심은 세 가지다.
- 무황 첨가 : 모든 발효는 포도 껍질에 존재하는 토착 효모로 진행된다. 안정화를 위해 쓰이는 이산화황(SO₂)은 사용하지 않는다. 와인은 보호막 없이 자기 모습을 드러낸다.
- 전방송이 발효 : 포도송이를 줄기째 발효조에 넣는다. 그는 잘 익은 줄기가 입안에서 섬세한 질감을 만든다고 말한다. 이는 100% 제경한 와인에서는 얻기 어려운 감각이다. 줄기는 신선함을 끌어올리고, 타닌의 결을 다르게 만든다.
- 새 오크통을 쓰지 않는다 : 숙성 단계에서는 여러 번 사용된 중고 오크통만 사용한다. 새 나무가 주는 바닐라 향과 구조감이 테루아를 가린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선택 덕분에 각 지역의 성격이 더 분명히 드러난다.
석회암과 함께 이어지는 철학
파칼레의 와인은 숙성 기간도 길다. 때로는 두 개의 빈티지가 나란히 지하 저장고에서 시간을 보낸다. 현재 시음 중인 2024년 빈티지 물랭아방과 뤼쇼트 샹베르탱(Ruchottes-Chambertin)은, 최근 수확량 감소에도 불구하고 이 방식이 여전히 유효함을 보여준다. 보졸레의 물랭아방과 코트 드 뉘(Côte de Nuits)의 그랑 크뤼는 겉보기엔 다르다. 그러나 파칼레는 이 둘의 공통점을 석회암에서 찾는다. 입안을 자극하는 신선함과 미네랄 긴장감은 바로 이 암반에서 나온다.
시음이 끝날 때마다 그는 아들 레노 파칼레(Reno Pacalet)와 함께 작은 돌을 오크통 위에 올려둔다. 라피에르와 로슈로 이어지는 과거에 대한 경의이자, 부르고뉴를 이루는 석회암에 바치는 상징적 행위다. 현재 레노는 아버지의 철학을 이어가고 있다. 그의 상트네 블랑(Santenay blanc)은 이미 주목할 만한 결과를 보여준다. 파칼레의 방식은 유행이 아니다. 한 세대에 걸쳐 축적된 선택의 결과다. 그리고 그 철학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Philippe Pacalet
- 12 rue de Chaumergy 21200 Beaune
- http://www.philippe-pacale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