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데나워와 흐루쇼프가 함께 마신 와인
1953년산 독일 리슬링 한 병이 최근 보스턴 경매에서 2만5천 유로에 팔렸다. 단순한 와인이 아니다. 이 와인은, 냉전 한복판에서 독일 전쟁포로 석방 협상을 위한 외교 만찬 자리에서 아데나워(Adenauer) 총리와 흐루쇼프(Khrouchtchev)가 함께 나눈 바로 그 와인이다.
베른카스텔러 닥터, 이름만으로도 전설
1900년, 율리우스 베겔러(Julius Wegeler)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포도밭 중 하나였던 *베른카스텔러 닥터(Bernkasteler Doctor)*의 작은 구획을 사들였다. 이 포도밭은 라인가우(Rheingau)와 모젤(Moselle) 지역을 아우르며, 지금까지도 그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20세기 최고의 빈티지로 꼽히는 1953년산, 남아 있는 마지막 다섯 병은 최근 공동 소유주 랄프 프렌첼(Ralf Frenzel)이 셀러에서 꺼냈다. 독일 와인사 연구자 다니엘 데커스(Dr. Daniel Deckers)의 조사 덕분에, 이 병들은 이제 단순한 술이 아닌 역사의 한 조각이 되었다.
1955년 9월 11일, 외교의 만찬 테이블 위에서
그날 서독의 콘라트 아데나워 총리는 소련 대표들을 초대했다. 흐루쇼프, 불가닌, 몰로토프까지 한 테이블에 앉아, 10년째 갇혀 있던 1만 명의 독일 전쟁포로 석방을 논의했다. 그 자리에서 선택된 와인이 바로 베른카스텔러 닥터 1953이었다. 푸아그라, 홀슈타인 햄, 베이컨을 두른 사슴 안심, 검은숲 체리 푸딩까지 이어지는 만찬과 함께.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이 와인이 마지막 포로들을 자유로 이끌고, 냉전의 긴장 속에서 외교의 숨통을 틔운 역할을 했다”고.
처음엔 숲 냄새, 그다음 과일 향이…
베른카스텔러 닥터 포도밭은 남향과 남서향의 가파른 경사면 위에 있어 햇빛을 듬뿍 받는다. 포도가 지닌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내기 위해, 이 와이너리는 독일 최초로 중력식 양조(gravity winemaking)를 도입했다. 포도를 억지로 다루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동시키는 방식으로, 섬세하고 오래 보관 가능한 와인을 만든다. 1953년은 특히 긴 가을과 따뜻한 기온 덕분에 늦수확에 이상적인 해였다. 균형과 섬세함, 뛰어난 숙성 가능성을 지닌 이 빈티지는 최근 보스턴 경매에서 2만 달러로 시작해 2만5천 유로에 낙찰됐다.
시음 후, 프렌첼은 이렇게 전했다.
“처음에는 약간 숲 냄새가 나지만 금세 사라지고, 이어 감귤, 복숭아, 자몽 향이 차례로 퍼집니다. 너무나 환상적이라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 한 병에는 단순한 술이 아니라, 시간과 역사, 그리고 감정이 함께 담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