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제국의 문, 아브리쿠르(Avricourt) 역

로렌(Lorraine) 평야 한가운데, 아무 데도 아닌 곳. 덩그러니 서 있는 거대한 석조 건물 하나가 있다. 창문은 판자로 막혀 있고, 문은 굳게 잠겨 있다. 그러나 그 벽면엔 여전히 희미한 글자가 남아 있다.

“도이치 아브리쿠르(Deutsch-Avricourt).”

1874년, 이곳은 유럽을 잇는 가장 거대한 국경역이었다. 프랑스와 독일 제국의 경계를 잇는 관문으로, 수천 명의 승객과 병사, 상인들이 이 역을 통과했다. 한때 하루 10만 명이 오가던 이곳은 지금, 사람의 발자국조차 찾기 힘든 폐허가 되었다.



전쟁이 남긴 선, 그리고 하나의 역

이 거대한 역은 1870년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의 결과로 탄생했다. 전쟁에서 패한 프랑스는 1871년 프랑크푸르트 조약에 따라 알자스-모젤(Alsace-Moselle) 지역을 독일 제국에 내주게 된다. 새로 그어진 국경은 철도망 한가운데를 가로질렀고, 기존의 이그네-아브리쿠르(Igney-Avricourt) 역이 독일 측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프랑스는 경제적 손실을 막기 위해 기존 역과 인근 마을 일부를 돌려주는 대신, 독일 영토 안쪽에 새로운 국경역을 세우겠다고 독일에 제안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도이치 아브리쿠르(Deutsch-Avricourt) 역이다. 프랑스가 비용을 전액 부담했고, 독일 황제 빌헬름 1세(Guillaume Ier)가 승인했다.

2차 대전 이후 '누벨-아브리쿠르'로 이름이 변경된 도이치 아브리쿠르 역


건축의 과시, 제국의 상징

1873년 5월 17일, 공사가 시작되었다. 설계자는 독일의 유명 건축가 요한 에두아르트 야콥스탈(Johann Eduard Jacobsthal). 그는 베를린의 알렉산더플라츠(Alexanderplatz) 역과 스트라스부르(Strasbourg) 역, 메스(Metz) 역을 설계한 인물이다. 역의 규모는 ‘국경’이라는 단어로는 설명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길이 100미터, 폭 20미터의 주 건물은 57개의 창문과 10개의 문을 갖췄고, 1·2·3등급 대합실, 세관, 우편소, 중앙난방시설까지 완비했다. 지붕을 덮은 철제 차양은 170미터에 달했으며, 황제의 전용 대합실에는 대리석 계단이 놓였다.
여행객은 역에 도착하자마자 시계를 55분 앞으로 맞춰야 했다. 프랑스보다 빠른 독일 시간에 맞추기 위해서다. 고딕체의 안내판, 뾰족한 철제 헬멧을 쓴 세관원, 그리고 오른쪽으로 달리는 기차들. 이곳은 국경을 넘는 그 순간,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프랑스와 독일 제국 사이의 도이치-아브리쿠르 국경역의 옛 엽서.


두 개의 마을, 하나의 기억

지금의 아브리쿠르(Avricourt)는 두 개의 행정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모르트에모젤(Meurthe-et-Moselle) 주의 프랑스령 아브리쿠르, 그리고 모젤(Moselle) 주의 독일령 아브리쿠르. 독일령 마을은 1871년 ‘도이치 아브리쿠르(Deutsch-Avricourt)’라 불렸고, 1915년에는 ‘엘프링겐(Elfringen)’으로 개명됐다. 그러나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모젤 지역이 프랑스로 돌아오면서, 역의 역할은 끝났다. 폭격으로 건물의 절반이 무너졌고, 남은 건물은 철도 노동자 숙소로 사용되다가 1969년 완전히 폐쇄되었다.

도이치-아브리쿠르 역 국경에서 세관 ​​검사를 받는 모습


잃어버린 시간 속의 건물

이 역은 한때 유럽의 중심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도 찾지 않는다. 지금 역 내부는 거의 폐허 상태다. 천장은 무너지고, 나무 난간은 사라졌다. 그래도 기다란 대합실 기둥에 남아 있는 주철 장식만은 그 시절의 화려함을 증언한다. 역의 공동 소유주 로망 마티스(Romane Mathys)는 남편과 함께 이 유산을 살려내려 노력 중이다. 그들은 호텔, 전시관, 요양시설 등 다양한 구상을 내놓고 있다. 문제는, 너무 커서, 너무 외딴 곳에 있다는 점이다.

내부에는 철도역의 영광스러웠던 과거 흔적이 전혀 남아 있지 않다.


“독일 양식은 못생겼다?” — 기억의 불편함

한 때 프랑스에서는 독일의 흔적을 잊으려 했다. ‘보슈(독일인)’의 흔적은 모두 지워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하지만 지역 주민들은 이 역은 역사 그 자체라는 인식이 있다. 지금도 마을 주변에는 당시 지어진 독일식 주택들이 남아 있다. 세관 거리(Rue de la Douane), 외교관 거리(Rue des Diplomates), 그리고 프로테스탄트 성당. 그 건물들은 여전히 사람들의 일상 속에 서 있다. 마치, 이곳이 한때 국경의 중심이었음을 잊지 말라고 말하듯이.

공동 소유자인 로만 마티스(왼쪽), 역사가인 장 에티엔(가운데), 아브리쿠르 시장인 에릭 데니


역이 말하는 것

아브리쿠르의 폐역은 그것은 두 제국이 부딪히던 시대의 흔적이자, 정체성과 기억의 경계에 서 있는 상징이다. 황량한 들판 한가운데서, 세월에 씻겨나간 벽돌 위로 빛이 스며든다. 멈춰버린 시계처럼, 도이치 아브리쿠르 역은 지금도 묵묵히 제국의 그림자를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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