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마지막 황제의 아들이 알자스에 정착한 사연
파트리크-에두아르 블로흐(Partrick-Édouard Bloch)는 자신이 베트남의 마지막 황제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모른 채 프랑스 알자스(Alsace)에서 평범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는 훗날 자신의 뿌리를 알게 된 뒤, 비범한 아버지 바오 다이(Bao Daï)와의 관계,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베트남 당국이 그에게 조상의 땅을 밟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한다.
“지금 나의 유일한 소원은 조상의 나라 베트남을 방문하는 것이다. 조부모의 무덤 앞에서 참배하고, 아버지가 늘 이야기하던 후에(Huê)의 궁전을 직접 보고 싶다. 하지만 베트남 당국이 내 입국을 막고 있다. 내가 그들에게 그렇게 두려운 존재일까? 나는 평화주의자다. 이 나이에 독재자가 될 리 없지 않은가.” — 파트리크-에두아르 블로흐
| 파트리크-에두아르 블로흐(Partrick-Édouard Bloch) |
알자스로 망명한 황제, ‘위대함의 수호자’ 바오 다이
| 1926년의 바오 다이(Bao Daï) |
비밀스러운 사랑, 그리고 그 결실
1957년, 알자스의 사냥 모임에서 바오 다이는 운명적인 만남을 했다. 그의 연인이 된 여성은 크리스티안 블로흐-카르세나크(Christiane Bloch-Carcenac)로, 이미 결혼한 상태였다. 두 사람은 사회적 제약을 무릅쓰고 사랑을 이어갔고, 그 결실이 바로 파트리크-에두아르 블로흐였다.
“부모님은 진정한 첫눈에 반한 사랑이었다. 어머니는 남편에게, 아버지는 황후 남 프엉(Nam Phuong)에게 그들의 관계를 숨기지 않았다. 나는 그 사랑의 결과물이었다.”
“내 아들이다!” — 황제가 아버지였던 순간
파트리크는 오랫동안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몰랐다. 에르스테인(Erstein)에서 어머니와 함께 자라며, 가끔 멋진 차를 탄 낯선 신사가 집을 찾아오는 것을 기억한다. 학교에서는 동양적인 외모 때문에 놀림을 받았고, 집에서도 누구도 진실을 말해주지 않았다. 그는 9살이 되던 해, 파리의 조르주 생크(Georges V) 호텔 엘리베이터 앞에서 그 비밀이 드러났다고 회상한다.
엘리베이터 직원이 황제에게 물었다.
“폐하, 이 소년은 누구입니까?”
그때 황제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내 아들이다.”
그 순간부터, 파트리크는 ‘그 신사’가 단순한 손님이 아니라, 베트남의 마지막 황제이자 자신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 아버지와 아들 |
두 세계 사이에서 —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
바오 다이는 아들에게 사랑이 깊었고, 둘은 여러 차례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는 격식을 내려놓고 역사와 정치, 망명 생활, 그리고 베트남의 문화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했다.
“아버지는 공식적인 이미지와 달리 매우 수다스러웠다. 그는 베트남의 역사와 왕좌에서 물러나야 했던 사연, 중국과 홍콩, 영국, 프랑스에서의 망명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알자스의 풍경이 베트남을 떠올리게 한다며 무척 사랑했다.”
둘은 자동차와 비행기라는 공통의 취미를 공유했고, 파트리크는 외모도 아버지를 많이 닮았다. 하지만 그 관계에는 한 가지 경계가 있었다. 그는 결코 아버지를 “아빠”라고 부를 수 없었다.
“나는 언제나 다른 이들처럼 ‘폐하(Majesté)’ 혹은 ‘시르(Sire)’라고 불러야 했다.”
황제 바오 다이는 생의 말년에 아들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정치에는 절대 관여하지 마라. 그곳에서 영혼을 잃게 될 것이다.”
그는 자신을 퇴위시킨 호찌민조차 존중했다.
“아버지는 호찌민에 대해 깊은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공산주의자였지만, 서로를 인간적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바오 다이는 유럽식 정장을 즐겨 입고, 여성 후궁들의 거처였던 규네세(gynécée)와 환관 제도를 폐지하는 등 개혁적인 통치를 추구했다. 또한 가톨릭 신자와 결혼하며 종교적 관습의 벽을 허물었다. 그는 베트남이 세계의 강대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믿었다.
| 베트남의 마지막 황제 바오다이는 1913년 10월 22일 후에(Huế)의 도안짱비엔(Doan Trang Vien) 궁에서 태어나 1997년 7월 31일 파리에서 서거했다. |
기억을 잇는 사람
오늘날 파트리크-에두아르 블로흐-카르세나크는 아버지의 기억을 지키기 위해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성장기와 가족 이야기를 담은 자서전 『폐하라고 불러야 한다(Tu dois l’appeler Majesté, 2021)』를 출간했다. 한편, 바오 다이 황제 역시 생전에 자서전 『안남의 용(Le dragon d’Annam, 플롱 Plon, 1980)』과 후에의 황궁을 다룬 저서 『자금성(La cité interdite, 멩제스 Menges, 1997)』을 남겼다. 파트리크에게 바오 다이는 권위나 권력의 상징이라기보다 인간적인 아버지였다. 그의 말처럼, “이 나이에 독재자가 될 리 없다”는 농담에는 역사의 무게와도 같은 평화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황제의 아들로 태어나 시민으로 살아간 한 남자의 이야기는, 정치와 제국의 경계 너머 인간의 존엄과 기억을 되묻는다.
| 자서전 『폐하라고 불러야 한다(Tu dois l’appeler Majesté, 20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