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한 끼가 보여주는 불평등의 구조
프랑스인들은 2021년에만 약 3억 9천만 개의 케밥을 먹었다. 초당 12개의 케밥이 팔린 셈이다. 그만큼 케밥은 프랑스 사회에서 가장 대중적인 음식 중 하나다. 전국에는 약 1만 2천 개의 케밥집이 흩어져 있다. 수치만 보면 그저 인기 음식의 통계 같지만, 이 숫자에는 또 다른 의미가 숨어 있다. 파리의 케밥 지도를 펼쳐보면 단순한 미식 지도가 아니라 도시의 사회적 구조가 드러난다. 이번에 분석한 건 파리 시내 631곳의 케밥집이다. 점 하나하나가 도시의 계층, 이동, 공간 분포를 비춘다.
케밥의 이름과 기원
케밥이란 무엇인가. 단어부터 지역마다 다르다. 언어학자 마티외 아방지(Mathieu Avanzi)의 조사에 따르면, 일드프랑스(Île-de-France) 사람들은 케밥을 ‘그렉(Grec)’이라 부르고, 알자스 지역에서는 ‘도네르(Döner)’라고 한다. 벨기에에서도 고유한 명칭을 쓰지만, 대부분의 프랑스 지역에서는 ‘케밥’이라는 이름이 통용된다.
케밥은 구운 고기를 넣은 샌드위치다. 터키, 그리스, 레바논 등 여러 지중해 지역에서 뿌리를 찾을 수 있다. 파리의 케밥집 이름을 분석해보면, 전체 631곳 중 약 58%가 특정 지역 이름을 포함하고 있다. 터키(175곳)와 레바논이 특히 두드러지고, 그리스, 독일, 마그레브(Maghreb) 지역이나 ‘플래닛 케밥(Planet Kebab)’ 같은 영어식 이름도 등장한다. 결국 케밥은 특정 지역의 음식이면서 동시에 세계화된 문화의 상징이다. 여러 문화가 얽혀 하나의 도시 음식으로 자리 잡은 셈이다.
케밥의 공간 분포
지도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불균형이다. 케밥집은 파리 전역에 고르게 퍼져 있지 않다. 세느(Seine) 강을 기준으로 우안에는 460곳, 좌안에는 165곳이 있다. 특히 7구와 6구에는 각각 세 곳, 단 세 곳뿐이다. 반대로 10구, 생미셸(Saint-Michel), 샤틀레(Châtelet) 일대는 밀집 지역, 이른바 ‘핫스팟’으로 나타난다.
플랑드르 대로(Avenue de Flandre), 라 샤펠 거리(Rue de la Chapelle), 포부르 생드니 거리(Rue du Faubourg Saint-Denis), 끌리쉬 대로(Boulevard de Clichy), 호슈슈와르 대로(Boulevard de Rochechouart) 등은 대표적인 축이다. 흥미롭게도 ‘호슈슈와르’는 파리에서 유일하게 여성 이름을 딴 대로로, 18세기 몽마르트르 수도원의 수녀장 마르그리트 드 호슈슈와르(Marguerite de Rochechouart)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파리의 사회적 단층
케밥의 분포를 사회지리학적으로 읽어보면, 도시의 단층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200미터 간격의 격자 지도로 밀도를 계산해보면, 케밥이 집중된 지역 대부분은 기차역 인근이다. 역 주변 5분 거리에는 38곳, 15분 거리에는 127곳이 위치한다. 이동 인구가 많은 지역일수록 케밥집이 많다는 점은 명확하다.
하지만 단순히 유동인구로만 설명되지는 않는다. 인구 구조를 보면 파리 중심부는 인구가 적고, 외곽은 밀집되어 있다. 이른바 ‘도넛형 인구 구조’다. 또 연령별로는 노년층이 좌안에, 젊은층이 우안에 집중된다. 케밥집은 젊은층이 많은 지역에 따라 분포한다.
경제적 요인도 결정적이다. 사회주택 비율과 저소득 가구 분포를 보면 동서 격차가 선명하다. 파리 동쪽은 상대적으로 가난하고, 서쪽은 부유하다. 16구와 7구는 역사적으로 상류층 거주지로 형성된 지역이다. 산업화 시기 서풍이 동쪽으로 불면서, 서쪽이 공해로부터 자유로웠던 탓이다.
결국 케밥집은 파리의 ‘경제 지도’를 따라간다. 부유한 서쪽 지역, 즉 도시 면적의 약 20%를 차지하는 곳에는 전체 케밥의 5%도 존재하지 않는다. 반대로 미슐랭 레스토랑과 정부 부처 건물은 그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7구만 해도 15개의 부처가 몰려 있으나 케밥집은 단 세 곳뿐이다. 이 지점에서 케밥 지도는 분명히 말한다. 파리는 하나의 도시가 아니라, 동쪽과 서쪽이라는 두 개의 도시다.
케밥의 젠트리피케이션
최근 몇 년 사이 케밥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의 흐름이 음식에도 스며든 것이다. 몽토르그유 거리(Rue Montorgueil)의 ‘메트르 케바비에(Maître Kebabier)’, 오페라 인근의 ‘그릴레(Grillé)’, 몽소(Monceau)의 ‘누라(Noura)’ 같은 고급 케밥집은 상류층 고객을 겨냥한다. 과거 노동자의 식사였던 케밥이 이제 ‘도시형 미식’으로 재해석되는 중이다. 10~15년 뒤 이 변화가 파리의 케밥 지형을 다시 그려놓을 가능성도 있다.
지도가 드러내는 결과는 도시의 사회적 구조를 드러내는 생생한 지도였다. 계층, 인구, 경제, 이동, 심지어 정치 성향까지 케밥의 분포가 말해준다. 한 입의 샌드위치 속에 도시의 불균형과 변화를 모두 품고 있는 셈이다. 케밥 지도는 결국 파리의 사회지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