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보다 관습이 우세한 ‘시음의 순간’
레스토랑에서 와인 시음은 의식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일종의 사회적 ‘연극’에 가깝다. 웨이터가 잔을 채우고 고객에게 병을 내밀면, 대부분은 형식적인 ‘좋습니다’라는 한마디로 절차를 마무리한다. 긴장된 공기 속에서 병은 이미 개봉됐고, 동석자들은 잔을 들 준비를 마쳤다. 그 분위기에서 “이 와인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라고 말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프랑스 민법 제1587조는 명확하다. “와인, 오일 등 구매 전 시음이 관습인 상품의 경우, 구매자는 맛보고 승인하기 전까지는 매매가 성립되지 않는다.” 즉, 고객은 와인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이를 거부할 권리가 있다.
첫 번째 경우, 와인에 ‘결함’이 있을 때
개봉된 와인을 반려할 수 있는 첫 번째 경우는 명백한 결함이 있을 때다. 특히, 소믈리에 앞에서 위축될 필요는 없다. 와인의 결함은 객관적이지만, 그 감지 능력은 사람마다 다르다. 실제로 코르크 냄새가 나는 ‘부쇼네(Goût de bouchon)’ 와인처럼, 일부 결함은 경험이 많지 않아도 충분히 감지할 수 있다. 만약 당신이 와인이 상했다고 판단한다면, 교체를 요청해야 한다. 그건 정당한 권리다.
두 번째 경우, 단순히 ‘입맛에 맞지 않을 때’
더 미묘한 상황은 와인 자체의 품질에는 문제가 없지만, 단지 취향에 맞지 않는 경우다. 이럴 때는 약간의 외교적 감각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마셔야 하는 건 아니다. 다만 예외가 있다. 소믈리에가 주문 전에 와인의 향과 맛의 특징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고객이 그 설명을 바탕으로 선택했다면, 그 책임은 소비자 쪽으로 넘어간다. 소믈리에는 고객이 어떤 경험을 원하는지 명확히 파악해야 한다. 그게 직업적 책임이다.
‘비싼 와인’이라고 예외는 없다
결정은 빠를수록 좋다. 반 병을 비운 뒤 돌려보내는 건 당연히 대부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러한 원칙은 고급 레스토랑뿐 아니라 일반적인 식당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식당의 등급과 상관없이, 고객은 와인을 거부할 수 있다. 레스토랑 입장에서도 거절된 병은 잔 단위 판매로 처리할 수 있기 때문에 손해가 크지 않다.
그렇다면 수천 유로짜리 고급 와인의 경우는 어떨까. 여전히 그 원칙이 변하지 않는다. 일례로, 한 프랑스 식당에서 어느 커플이 르루아(Leroy) 의 뮈지니(Musigny) 를 주문했다. 병당 수천 유로짜리 와인이었다. 남성 손님은 만족했지만, 여성 손님은 “효모 냄새가 난다”며 병을 반려했다. 결국 남성은 그 병을 결제하고, 같은 와인을 한 병 더 주문했다. 소믈리에는 그 순간 아찔했지만, 고객이 거부하면, 아무도 그것을 막을 수 없다.
한 모금의 자유
결국 와인을 거절하는 행위는 단순히 예의의 문제가 아니라, 소비자의 권리와 미각의 문제다. 소믈리에와 고객 사이의 짧은 대화 속에서도, 한 잔의 와인을 둘러싼 문화적 미묘함과 상호 존중이 담겨 있다. 중요한 건 위축되지 않는 것이다. 와인을 맛본 뒤 고개를 끄덕이든, 병을 돌려보내든, 그 순간의 선택은 전적으로 손님에게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