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지도 희지도 않은 새로운 와인, ‘블루주(blouge)’의 등장
프랑스 와인 업계에 새로운 색채가 등장했다. 흰 포도 품종과 붉은 포도 품종을 함께 양조해 만든 독특한 와인, ‘블루주(blouge)’다. 강렬한 폭염이 이어지며 진한 레드와인의 소비가 주춤한 요즘, 블루주는 상쾌함과 산미, 부드러운 탄닌을 동시에 갖춘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치즈와 어울릴 와인을 두고 붉은 와인과 흰 와인 사이에서 여전히 의견이 갈린다면, 블루주는 그 논쟁을 잠재울 만한 존재다.
보르도에서 태어난 실험적 와인
블루주는 붉은 품종의 포도를 흰 품종의 포도즙 속에서 침용(macération)시키는 방식으로 만든다. 이 참신한 발상은 전통적인 혼합(assemblage) 문화가 깊게 뿌리내린 보르도 지역에서 태어났다. 보르도는 종종 보수적인 지역으로 평가받지만, 최근 몇 년 사이 기존 원산지 통제 명칭(AOC)의 틀을 벗어나 ‘뱅 드 프랑스(Vin de France)’ 명칭 아래 새로운 풍미를 탐구하는 젊은 와인 생산자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론 강 오른쪽 제방의 블라예(Blayais)와 부르제(Bourgeais) 사이에 자리한 위베르(Hubert) 가문은 전통과 혁신을 함께 이어가는 대표적인 이름이다. 이 가문은 페이보놈 레 투르(Peybonhomme Les Tours) 도멘과 샤토 그롤레(Château Grolet)를 소유하며, 유기농과 바이오다이내믹 방식으로 15종이 넘는 와인을 생산한다. 이들이 만든 다양한 와인 중 하나가 바로 ‘블루주’, 그중에서도 ‘꾸베 콜레트(Cuvée Colette)’다.
| 라셸 위베르(Rachel Hubert)(왼) |
‘꾸베 콜레트’의 탄생 배경
블루주의 시작은 계산된 시장 전략이 아니라 한 번의 실험에서 비롯됐다. 라셸 위베르(Rachel Hubert)는 보르도의 한 와인바의 요청을 계기로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유행을 따르기 위해 일정한 스타일의 와인을 만들지 않고, 미숙한 포도를 수확해 가벼운 맛을 내는 일도 하지 않으며, 다만 실험을 즐긴 결과가 블루주다. 그렇게 탄생한 꾸베 콜레트는 라셸이 자신의 딸 이름을 따서 붙인 와인이다. 베 콜레트(Cuvée Colette) 블루주는 소비뇽 블랑(Sauvignon Blanc)과 세미용(Sémillon) 포도즙 속에 카베르네 프랑(Cabernet Franc) 포도를 침용시켜 만든다. 흰 품종이 주는 풍부함과 식물성 향미가 붉은 품종의 산미와 구조감으로 균형을 이룬다.
정의하기 어려운 맛, 직접 경험해야 할 와인
전체의 약 61%를 흰 품종이 차지하지만, 블루주의 색과 향은 오히려 붉은 와인에 가깝다. 그러나 입안에서 느껴지는 인상은 그 어떤 카테고리로도 단정하기 어렵다. ‘화이트도 레드도 아닌’ 그 경계의 맛은 실제로 마셔보지 않으면 설명하기 힘든 복합적인 감각을 남긴다. 전문가들은 블루주를 즐길 때 온도 조절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화이트처럼 너무 차갑게도, 레드처럼 상온에서도 마시지 않는다. 약 16도 정도가 이상적이다. 그 절묘한 ‘중간’이야말로 블루주의 철학을 대변한다.
유행을 넘어, 새로운 전통이 될까
블루주는 ‘가벼움과 마시기 쉬움’을 추구하는 시대적 흐름과 정확히 맞물린 와인이다. 그러나 그 기원이 단순히 트렌드를 좇은 결과는 아니다. 자연스러운 진화의 결과라고 말할 수 있다. 블루주는 일시적 유행에 머물지 않고, 스파클링 내추럴 와인처럼 꾸준히 사랑받게 될 것이라는 것이 최근 프랑스 와인 업계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라셸 위베르(Rachel Hubert)가 자신의 블루주에 붙인 이름은 ‘리스크를 사랑하라(L’Amour du Risque)’. 이 이름처럼, 보르도의 오래된 토양 위에서 태어난 새로운 실험이 프랑스 와인의 미래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 ‘리스크를 사랑하라(L’Amour du Risqu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