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스의 포도밭, 사부아(Savoie) 와인의 기본 정보
프랑스 동부, 알프스 산맥의 자락 아래 자리한 사부아(Savoie)는 유서 깊은 포도밭의 땅이다. 이 지역의 포도밭은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것 중 하나로, 유럽의 주요 교역로 한가운데에서 성장해왔다. 지리적 요충지 덕분에 일찍부터 다양한 토착 품종과 외래 품종이 교차하며 독특한 와인 문화가 형성됐다.
산의 기운을 머금은 백포도주
사부아의 백포도주는 알코올 도수가 낮고 천연 탄산이 풍부하다. 신선하고 산미가 살아 있으며, 산지 요리와 탁월한 궁합을 자랑한다. 녹진한 치즈 요리인 라클렛(raclette)과의 조합은 대표적이다.
최근 고도 높은 지역에서 자란 포도의 신선미가 인기를 얻으면서 사부아의 백포도주는 다시 주목받고 있다. 주요 품종은 알테스(altesse, 일명 루세트·roussette)와 자끄레(jacquère)다. 여기에 샤르도네(chardonnay)와 샤슬라(chasselas)가 더해져 다채로운 풍미를 낸다. 특히 '루세트 드 사부아(Roussette de Savoie)'의 명칭으로 생산되는 알테스, 그리고 시냉-베르주롱(Chignin-Bergeron) 지역의 루산(roussanne)은 사부아 백포도주의 정점으로 평가된다.
섬세한 향과 산미의 적포도주
사부아의 적포도주는 대체로 가볍고 청량하다. 특히 몽되즈(mondeuse)는 지역을 대표하는 품종으로, 피노 누아(pinot noir)나 시라(syrah)와 섞이기도 한다. 순수 몽되즈로 만든 와인은 짙은 색과 섬세한 향을 지니며, 후추와 붉은 과실의 아로마가 돋보인다. 다만 좋은 빈티지는 3~4년 중 한 번꼴로 찾아올 만큼 드물다.
토착 품종의 보고
사부아는 놀라울 만큼 다양한 토착 포도 품종을 간직한 지역이다. 현재 약 20여 종의 고유 품종이 재배되고 있으며, 각기 독특한 개성을 지닌 와인이 생산된다. 생제르맹(Saint-Germain) 도멘의 페르상(persan) 2020은 힘찬 구조감을, 루도비크 아르셰(Ludovic Archer) 도멘의 ‘두스 누아르(douce noire)’는 섬세한 향을 보여준다.
포도밭이 그려내는 지리적 풍경
사부아의 포도밭은 북쪽 스위스의 레만호(lac Léman)에서 남쪽 이제르(Isère)까지 이어지는 축을 따라 펼쳐진다. 이 축을 기준으로 세 구역으로 나뉜다.
- 첫 번째는 샹베리(Chambéry) 계곡과 콩브 드 사부아(Combe de Savoie) 일대로, 사부아 와인의 중심지다. 아르뱅(Arbin)에서는 점토질 토양 덕분에 풍미 깊은 몽되즈가, 메랑드(Mérande) 성의 포도밭에서는 섬세한 레드가 생산된다.
- 두 번째 구역은 레만호 주변으로, 샤슬라 품종으로 만든 백포도주가 주류다.
- 세 번째는 부르제호(lac du Bourget) 일대로, 루세트 드 사부아-프랑지(Roussette de Savoie-Frangy), 뱅 드 사부아-종지외(Vin de Savoie-Jongieux), 그리고 세이셀(Seyssel) 같은 명칭이 이곳에 속한다. 제라르 랑베르(Gérard Lambert) 도멘의 모렛(molette)은 이 지역을 대표하는 로컬 품종이다.
명칭과 구분
사부아 포도밭은 사부아와 오트-사부아(Haute-Savoie)를 중심으로, 인근 이제르와 앵(Ain) 지역까지 약 2,200헥타르에 이른다. 하지만 명칭은 단출하다. 주요 3개 AOC가 존재한다.
- 뱅 드 사부아(Vin de Savoie) : 가장 넓은 명칭으로, 리파이유(Ripaille)의 샤슬라, 쇼타뉴(Chautagne)의 가메(gamay)와 몽되즈, 아프르몽(Apremont)과 아빔(Abymes)의 자끄레가 포함된다. 시냉(Chignin)의 루산은 사부아 최고의 백포도주로 꼽힌다.
- 루세트 드 사부아(Roussette de Savoie) : 론(Rhône) 강변의 프랑지(Frangy)에서 종지외(Jongieux)까지 이어지며, 알테스를 100% 사용해야 한다. 샤르도네가 보조 품종으로 쓰이기도 한다.
- 세이셀(Seyssel) : 북쪽 론 강변의 작은 지역으로, 알테스가 주를 이루며 비교적 탄탄한 구조를 지닌다.
- 이 밖에 지역 표시용 명칭으로 '이제르(IGP Isère)'와 '알로브로주(Vins des Allobroges)'가 있다.
| Domaine Genoux - Château de Mérande |
젊은 토양이 빚는 알프스의 맛
사부아의 포도밭은 빙하가 물러난 뒤 드러난 경사면 위에 조성돼 있다. 침식과 산사태, 낙석 등으로 끊임없이 변하는 땅이다. 특히 1248년 붕괴된 그라니에 산(Mont Granier)의 암석 위에 조성된 아프르몽 포도밭은 알프스 지질의 젊음을 상징한다. 이런 지질적 특징은 와인에 섬세한 요오드 향과 미네랄감을 더한다. 뛰어난 생산자의 손에서 이 백포도주는 단순한 라클렛용을 넘어, 생선과 갑각류, 치즈, 스시, 세비체 등 현대적인 요리와도 어울리는 와인으로 변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