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시간씩 줄 서서 사는 ‘그리프 크리스마스 볼’의 정체
프랑스의 스트라스부르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요즘 가장 길게 늘어선 줄은 단연 유리 공예 부스 앞이다. 쁘띠프랑스 구역 마켓의 중심부에서는 매일같이 몇 시간짜리 대기 행렬이 이어진다. 줄의 끝에는 메장탈(Meisenthal) 국제유리예술센터, 시아브(CIAV·Centre International d’Art Verrier) 부스가 있다.
판매 현장은 말 그대로 전쟁터에 가깝다. 매일 아침 200개씩 추가 입고되지만, 부스 문이 열리기도 전에 이미 대부분이 줄을 선다. 매일 재고가 동나고, 물량은 항상 부족하다. 일부 방문객은 개장 몇 시간 전부터 자리를 잡고 기다린다. 2025년 시리즈인 '그리프(Grip)'는 표면이 미끄러지지 않는 특수 처리된 크리스마스 장식 볼로, 장식성과 실용성을 함께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열풍은 프랑스 현지에만 그치지 않는다. 프랑스 북부 릴(Lille)에서 기차를 타고 당일치기로 스트라스부르를 찾았다는 자매는 “크리스마스 볼 하나를 사기 위해 새벽에 출발했다”고 말한다. 또 다른 방문객은 “매년 메장탈 볼을 두 개씩 구입한다”고 밝혔다. 1인당 구매 가능 수량은 최대 2개로 제한돼 있다.
외국인 관광객도 예외가 아니다. 캐나다에서 왔다는 한 부부는 “캐나다에서는 스트라스부르 크리스마스 마켓이 워낙 유명하고, 그중에서도 메장탈 유리볼을 아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말한다. 이 장식 유리볼에는 오래된 전설도 전해진다. 과거 가뭄으로 과일이 모두 말라버려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할 것이 사라지자, 메장탈의 한 유리공이 대신 유리를 불어 장식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다. 이 작은 선택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유리 장식 전통의 출발점이 됐다는 설명이다.
이 같은 열기는 스트라스부르뿐 아니라 인근 도시로도 확산되고 있다. 모젤 주(Moselle)의 메츠(Metz)에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다만 메장탈 본거지 외부에서 판매되는 유리볼에는 지자체 공동체가 부과한 5유로의 추가 세금이 붙는다.
현재 그리프 크리스마스 볼의 판매 가격은 색상에 따라 33유로에서 37유로 선에서 형성돼 있다. 한화로 환산하면 약 4만8천 원에서 5만4천 원 수준이다. 단순한 장식품으로 보기에는 결코 저렴한 가격은 아니지만, 수작업 유리 공예라는 점과 매년 바뀌는 한정 디자인, 그리고 수량 제한이 더해지며 수집 대상에 가까운 위상을 얻고 있다.
스트라스부르 크리스마스 마켓은 유럽에서도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크리스마스 시장 중 하나로 꼽힌다. 이곳에서 벌어지는 그리프 크리스마스 볼 열풍은 단순한 소비 현상을 넘어, 지역 공예 산업과 관광, 그리고 전통이 어떻게 현대적인 문화 콘텐츠로 재해석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몇 시간의 기다림과 제한된 수량, 그리고 해마다 달라지는 디자인이 만들어내는 희소성은 이 작은 유리공 하나를 하나의 문화 아이콘으로 끌어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