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 라클렛(Raclette), 어떤 와인을 마셔야 할까?

한겨울 라클렛(Raclette), 어떤 와인을 마셔야 할까?

눈 덮인 산장에서든, 도심의 식탁에서든 라클렛은 겨울을 상징하는 음식이다. 녹아내린 치즈와 감자, 샤르퀴트리의 조합은 단순하지만 강렬하다. 이 단순함 때문에 오히려 와인 선택은 까다롭다. 과하면 치즈와 충돌하고, 가벼우면 존재감이 사라진다. 라클렛과 어울리는 와인의 기준은 명확하다. 친근하고, 균형이 좋으며, 지방감을 감당할 수 있을 것.



라클렛(Raclette)은...

라클렛은 스위스 발레(발레주, Valais) 지역에서 시작된 오래된 요리다. 본래는 벽난로 옆에 반으로 자른 치즈 덩어리를 세워두고, 녹아내린 표면을 조금씩 긁어 먹는 방식이었다. 바그네(Bagnes), 아니비에(Anniviers), 아봉당스(Abondance) 같은 지방감 높은 치즈가 주재료였다.
약 40여 년 전 전기식 라클렛 기계가 등장하면서 이 조리법은 식탁 중앙으로 이동했고, 자연스럽게 모두가 함께 즐기는 식사가 됐다. 현재 발레 지역의 전통 라클렛 치즈는 원산지 통제 명칭(AOC)으로 보호받고 있다. 비슷한 용융 성질의 치즈는 사부아(Savoie), 캐나다 퀘벡(Fritz, Oka, Raclette des Appalaches), 심지어 호주 말레니(Maleny)와 하이디 팜(Heidi Farm)에서도 생산된다.
오늘날 라클렛은 치즈만의 요리가 아니다. 산악 샤르퀴트리, 찐 감자 또는 재 속에서 익힌 감자, 다양한 채소가 함께 놓이며 하나의 완성된 식사가 된다. 이 조합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지방감과 단순한 풍미가 중심이라는 점이다.


라클렛과의 조화, 단순함이 해답이다

라클렛과의 와인 페어링에서 핵심은 ‘대결을 피하는 것’이다. 녹은 치즈의 지방과 정면으로 맞붙기보다는, 이를 정리하거나 부드럽게 감싸는 방향이 바람직하다. 이 때문에 단일 품종 와인이 효과적이다.
사부아 지역은 이 점에서 이상적인 선택지를 제공한다. 몽되즈(Mondeuse)는 약간의 탄닌을 지닌 레드 와인을 만들고, 알테스(Altesse)는 과일 향과 상쾌함이 살아 있는 화이트 와인을 만든다. 모두 라클렛의 단순한 풍미와 잘 맞는다.


라클렛에 어울리는 화이트 와인

라클렛에는 화이트 와인이 기본이다. 프랑스 레제(Les Gets)의 크리샤르 호텔 레스토랑 오너 셰프 그레고리 들레샤(Grégory Delechat)는 사부아 쉬냉 베르주롱(Chignin-Bergeron) ‘꼼 아방(Comme avant)’ – 장프랑수아 케나르(Jean-François Quénard) 도멘 – 을 추천한다. 질감이 풍부하고 여운이 길며, 살구 향이 라클렛 치즈의 고소함과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와인의 풍부함이 요리의 밀도와 공명한다는 설명이다.
보다 힘 있는 조합을 원한다면 쥐라(Jura)의 샤르도네도 유효하다. 도멘 롤레(Domaine Rolet)의 우이예(ouillé) 스타일 샤르도네는 약 10개월간 오크 숙성을 거쳐 둥근 질감과 길이를 확보한다. 치즈의 농도에 밀리지 않는 구조를 지닌다.
반대로 산뜻한 대비를 원한다면 드라이하고 생동감 있는 화이트 와인이 적합하다. 사부아의 루세트 드 사부아(Roussette de Savoie)는 대표적인 예다. 장 페리에 에 피스(Jean Perrier et Fils) 도멘의 알테스 품종 와인은 섬세한 꽃 향과 경쾌한 산미, 미묘한 쌉쌀함이 녹은 치즈의 무게를 정리한다.
스위스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샤슬라(Chasselas)는 스위스를 대표하는 화이트 품종으로, 테루아에 따라 매우 다양한 표정을 보인다. 발레 지역의 파브르 존 & 마이크(Favre John & Mike) 도멘, 콜롱베 셀렉시옹(Collombey Sélection)은 스테인리스 탱크 숙성으로 순수한 과일과 미네랄을 유지하며 라클렛의 풍부함을 안정적으로 받쳐준다.


레드 와인을 고른다면 반드시 가볍게

라클렛에 레드 와인을 포기할 수 없다면 조건은 분명하다. 가볍고, 탄닌이 적으며, 과일 중심일 것. 그래야 치즈를 누르지 않고 샤르퀴트리와 조화를 이룬다.
사부아 알로브로주 IGP의 도멘 데 아르두아지에르(Domaine des Ardoisières) ‘아르질 루즈(Argile rouge)’는 감마이(Gamay)를 중심으로 페르상(Persan)을 블렌딩한 와인이다. 향이 풍부하고 과일 중심이며, 약간의 혈육감 있는 인상이 산악 햄과 잘 어울린다.
조금 더 구조를 원한다면 몽되즈 레드가 대안이 된다. 탄닌과 길이를 갖춘 이 품종은 산지 햄의 염도와 감자의 질감을 안정적으로 이어준다. 단, 과도한 힘은 피하는 편이 낫다.


라클렛에는 과시보다 조화가 필요하다

라클렛은 복잡한 미식이 아니다. 그렇기에 와인 역시 설명이 필요 없는 방향이 이상적이다. 지나치게 야심찬 선택보다는, 치즈의 지방을 이해하고 식탁의 리듬을 유지하는 와인이 적합하다. 한겨울 라클렛의 진짜 매력은 와인 이름이 아니라, 녹아내린 치즈를 중심으로 이어지는 느린 시간에 있다.


다음 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