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 하늘을 밀어내는 가장 화려한 방법
리우, 베네치아처럼 세계적으로 유명한 카니발 도시들이 먼저 떠오르지만, 프랑스 동부 알자스 역시 만만치 않은 축제의 땅이다. 이 지역도 거리로 나와 행진하고, 분장하고, 음악을 울리며 계절의 변화를 맞이한다. 특히 3월 29일 열리는 스트라스부르 카발카드(la Cavalcade de Strasbourg)를 앞두고, 이미 여러 도시에서 축제의 불씨가 타오르고 있다. 겨울 끝자락, 봄의 기운이 스며드는 시기. 프랑스의 ‘마르디 그라(Mardi Gras, 사순절 전 화요일)’와 함께 알자스는 본격적인 카니발 시즌에 들어선다. 달력에 표시된 날짜보다 더 중요한 건, 지금 이 순간 거리에서 펼쳐지는 다채로운 퍼레이드다. 여행자든 현지 한인이든, 이 시기 알자스에 있다면 한 번쯤 경험해볼 만한 장면들이다.
스트라스부르, 시즌의 중심
알자스의 상징적인 행사인 스트라스부르 카발카드는 3월 29일 일요일 열린다. 거대한 장식 수레, 브라스 밴드, 각양각색의 캐릭터들이 도시를 가로지른다. 마조레트, 깃발 퍼포머, 가면을 쓴 음악 팀까지 전통적인 카니발 요소가 총집합한다. 규모와 완성도 면에서 지역을 대표하는 행사다.
뮐루즈, 국경을 넘는 축제
2월 18일부터 22일까지 열리는 뮐루즈(Mulhouse) 카니발에는 프랑스뿐 아니라 독일, 스위스, 벨기에 등 인접 국가에서 온 참가자들이 모인다. 2천 명이 넘는 인원이 함께하며 라인강 유역 특유의 문화가 어우러진다. 특히 오랭(Haut-Rhin) 지역의 상징인 ‘뮐루저 바기스(Mülhüser Waggis)’가 등장해 분위기를 끌어올린다. 알자스 특유의 캐릭터로, 이 지역 카니발을 대표하는 존재다.
사베른, 전통의 상징들
사베른(Saverne)에서는 전통적인 ‘악마’와 ‘광대’ 캐릭터들이 거리를 점령한다. 로앙 성(Château des Rohan) 공원에서 어린이 분장 체험과 퍼레이드가 열리고, 밤에는 횃불 행진과 함께 오케스트라 팜 비치(Palm Beach)가 이끄는 대형 카니발 파티가 이어진다. 일요일에는 국제 카발카드가 펼쳐지고, 마지막에는 ‘마녀 화형식’이라는 상징적 퍼포먼스로 축제를 마무리한다. 겨울을 태워 보내는 의식과도 같다.
셀레스타와 올탱그
셀레스타(Sélestat)에서는 제34회 마쇼르 카니발(Carnaval des Machores)이 열려 탄츠마텐(Tanzmatten) 복합 공간을 중심으로 도시 전역을 행진한다. 야간 퍼레이드, 구겐무지크(guggenmusik, 카니발 브라스 밴드) 공연, 국제 행진까지 이틀 내내 프로그램이 이어진다.
올탱그(Oltingue)에서는 2월 22일 제11회 카발카드가 열린다. 약 30개 팀과 수레, 구겐무지크 공연이 어우러져 비교적 작은 도시지만 밀도 높은 분위기를 만든다.
마르무티에, 위상부르, 콜마르
마르무티에(Marmoutier)는 2월 28일 반야간 퍼레이드를 선보인다. 수십 대의 수레, 불을 뿜는 퍼포머, 다양한 시각 효과가 더해지고 이곳에서도 마녀 화형식이 진행된다.
3월 1일에는 바랭(Bas-Rhin) 지역 주민들이 위상부르(Wissembourg)로 향하고, 오랭 지역 주민들은 콜마르(Colmar)를 찾는다.
특히 콜마르 카발카드는 1961년부터 이어진 전통 행사다. 올해도 10대 이상의 수레와 마조레트, 브라스 밴드가 참여한다. 지역 축제로 시작해 이제는 하나의 문화적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세르네, 시즌의 피날레
4월 12일 열리는 세르네(Cernay) 카니발은 뮐루즈 다음으로 큰 규모를 자랑한다. 시즌을 마무리하는 행사다. 일반적인 수레와 음악 팀 외에도 ‘왕의 수레’와 카니발 여왕이 등장한다. 마지막에는 모든 참가자가 함께하는 대형 피날레 공연이 펼쳐진다. 구겐무지크와 마조레트가 어우러진 장면은 알자스 카니발의 정수를 보여준다.
아이들을 위한 카니발
카니발은 가족 축제이기도 하다.
브뤼마스(Brumath)와 사베른에서는 어린이 전용 카니발이 열린다. 사베른의 경우 성 공원 천막에서 공연도 이어진다.
콜마르에서는 2월 28일 어린이 카발카드가 열리고, 다음 날 대형 퍼레이드가 이어진다. 올해 주제는 “카니발, 올림픽을 만나다”다.
몰스아이(Molsheim)에서는 거리 공연이 더해진다. ‘필 아 므쥐르(Fil à mesure)’의 저글링 1인극과, ‘로스 과카몰레스 이 아미고스(Los Guacamoles y Amigos)’의 중앙아메리카풍 클라운 공연이 아이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색다른 선택, 로스하임의 베네치아 카니발
알자스의 전통이 라인강 유역 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면, 로스하임(Rosheim)은 잠시 이탈리아로 방향을 튼다. 3월 7일과 8일, 로마네스크 도시 로스하임에서는 베네치아 카니발(Carnaval vénitien de Rosheim)이 열린다. 도시 곳곳을 천천히 거니는 화려한 의상과 가면의 인물들. 두 개의 성당 앞 광장과 곤돌라 연출 공간에서 마치 베네치아에 온 듯한 장면이 펼쳐진다. 토요일에는 베네치아 음악 콘서트와 함께 조명과 음향이 어우러진 의상 퍼레이드가 진행된다. 라인강 유역 특유의 카니발과는 전혀 다른, 우아하고 연극적인 분위기다.
알자스 카니발을 즐기는 방법
알자스의 카니발은 단순한 퍼레이드가 아니다. 지역 정체성과 계절의 변화를 함께 축하하는 공동체의 의식에 가깝다. 한국 여행객에게는 프랑스의 또 다른 얼굴을 만나는 기회가 되고, 프랑스에 거주하는 한인에게는 지역 사회와 연결되는 통로가 된다. 화려한 수레와 음악 속에서 겨울의 잔재를 털어내고, 다가오는 봄을 몸으로 맞이하는 시간. 회색 하늘이 길게 이어지는 계절일수록, 이런 색채의 폭발은 더 선명하게 다가온다. 알자스의 거리에서 울리는 구겐무지크 소리와 함께, 봄이 조금 더 가까워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