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동부의 관문 스트라스부르(Strasbourg)는 도시 자체로도 풍부한 문화와 건축의 향연이지만, 기차로 단 한 시간만 벗어나면 또 다른 알자스(Alsace)의 얼굴이 기다린다. 지역철도 TER(테에르)를 타고 떠나는 짧은 여행은 거창한 계획 없이도 충분히 알자스의 본모습을 느끼게 한다. 오래된 마을, 포도밭, 그리고 유럽 산업유산까지 — 다섯 곳의 숨은 명소를 따라가 본다.
1. 오베르네(Obernai), 옛 정취가 살아 있는 전통 마을
스트라스부르 남쪽으로 약 30분, 알자스의 고전적 풍경을 그대로 간직한 마을 오베르네에 닿는다. 농업지대의 입구에 자리한 이 마을은 좁은 골목길과 목조가옥, 그리고 중세풍 성벽이 어우러져 있다. 산책을 하며 고개를 들어 올리면 마치 동화 속에서 막 걸어 나온 듯한 집들이 시선을 잡는다. 마을 중심에는 여섯 개의 두레박이 달린 ‘시즈 소의 우물(Puits à Six Seaux)’과 ‘생트 오딜(Sainte Odile) 분수’, ‘할 오 블레(Halle aux Blés, 곡물 시장)’ 그리고 알자스 북부 전통의 종탑 ‘베프루아(Beffroi)’가 있다. 작은 규모지만 세월의 깊이를 품은 마을이다.
2. 사베른(Saverne)와 로한(Rohan) 성
서쪽으로 향하면 산자락 아래에 자리한 사베르느가 나타난다. 마을의 중심에는 웅장한 로한 성(Château des Rohan)이 자리한다. 고전주의 양식의 이 건축물은 시대의 변화에 맞춰 다양한 역할을 해왔다. 지금은 박물관, 공연장, 초등학교, 경찰서, 그리고 유스호스텔까지 함께 들어서 있다. 박물관에서는 고고학 유물, 알자스 전통의상, 민속품, 회화 등 다양한 전시가 이어진다. 외관의 균형 잡힌 석조 구조를 한참 바라본 뒤 내부로 들어가면, 사베르느의 오랜 역사와 문화적 층위가 자연스레 이어진다.
3. 바르(Barr), 알자스 와인의 심장
오베르네 남쪽, 포도밭으로 둘러싸인 바르는 알자스 와인의 수도라 불린다. 전통적인 목조 가옥이 늘어선 골목 사이로 키르네크(Kirneck) 하천이 흐르며 마을에 청량함을 더한다. 주변에는 와이너리와 포도밭이 이어져 있어, 도멘(Domaine, 포도주 생산지) 방문이 여행의 핵심이 된다. 바르에서는 매년 가을, 알자스에서 가장 오래된 와인 박람회와 수확 축제 ‘푀트 데 방당주(Fête des Vendanges, 포도 수확제)’가 열린다. 이 마을이 ‘알자스 와인의 수도’로 불리는 이유가 분명해진다.
4. 콜마르(Colmar), 자유의 여신상에서 시작된 이야기
알자스 남부의 중심 도시 콜마르는 화가의 팔레트처럼 다채롭다. 하지만 이곳을 특별하게 만드는 건 바로 조각가 오귀스트 바르톨디(Auguste Bartholdi)의 고향이라는 점이다. 그는 대서양 건너 미국 뉴욕 항구에 서 있는 ‘자유의 여신상’을 만든 인물이다. 콜마르의 ‘바르톨디 생가 박물관(Musée Bartholdi)’에서는 그의 생애와 작품 세계, 그리고 여신상이 미국으로 건너가게 된 과정을 볼 수 있다. 프랑스에 남은 대표작으로는 ‘벨포르의 사자(Le Lion de Belfort)’와 ‘클레르몽페랑의 베르킹게토릭스(Vercingétorix de Clermont-Ferrand)’가 있다. 도시 입구에는 자유의 여신상 모형이 세워져 있어 짧은 기념 사진으로 여정을 마무리하기 좋다.
5. 뮐루즈(Mulhouse), 철도의 도시
가장 남쪽의 산업도시 뮐루즈에는 유럽 최대의 철도 박물관 ‘시테 뒤 트랭(Cité du Train, SNCF 철도유산관)’이 있다. 50년 전 문을 연 이 박물관은 170년의 철도 역사를 한눈에 보여준다. 실제 열차 차량, 모형 전시, 몰입형 연출 공간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방문자는 단순한 관람을 넘어 ‘철도의 시대’를 체험하게 된다. ‘파르쿠르 스펙타클(Parcours Spectacle)’ 섹션에서는 철도의 황금기, 유급휴가 시대의 기차 여행, 산악 노선, 기관사들의 삶 등을 생생히 재현한다. 어린이와 성인 모두 즐길 수 있는 복합적 전시 공간이다.
알자스의 또 다른 얼굴을 향해
스트라스부르에서 TER를 타면, 단 한 시간 만에 완전히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마을 하나하나가 역사와 생활, 풍경의 층위를 품고 있다. 짧은 거리 안에 중세 도시, 와인 밭, 조각가의 흔적, 산업유산이 함께 존재하는 곳 — 그것이 알자스의 매력이다. 기차 창밖으로 스치는 포도밭 사이로, 이 지역의 다층적 정체성이 천천히 드러난다.